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단순한 전쟁 서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 감정, 갈등, 그리고 ‘진정한 용기’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특히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각각 다른 방향에서 용기를 정의하고, 선택한다. 헥토르는 책임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인물로서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무를 지킨다. 반면 아킬레우스는 개인의 감정과 명예를 우선시하며,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행동한다. 이 글에서는 ‘책임’, ‘명예’, ‘감정’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두 인물이 보여주는 용기의 방향성과 본질을 비교해본다.
책임의 무게를 짊어진 헥토르 vs 감정에 충실한 아킬레우스
헥토르는 트로이의 장남이자 최고 장군으로서 단지 전사일 뿐 아니라 도시와 가족, 공동체를 지키는 수호자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전장에 나서는 것은 단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닌 ‘책임의 수행’이다. 그는 안드로마케와 아들 아스티아낙스를 뒤로 한 채,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성문을 나선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나아가는 모습은 비겁한 회피가 아닌, ‘나 아니면 누가 지킬 것인가’라는 공동체적 책임의 상징이다. 헥토르의 용기는 바로 이 ‘책임을 수용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그는 영웅으로서 명예를 탐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많은 고전 속 인물들이 이상화된 방식으로 그려지는 반면, 헥토르는 철저히 인간적이면서도 그 속에서 인간 이상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보여준다. 그는 단순한 명예욕이 아닌, 도시에 대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의무감으로 전장을 선택한다. 반면 아킬레우스는 책임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인물이다. 그는 아가멤논과의 갈등에서 자존심이 상하자 그 어떤 논리적 책임도 다 내려놓고 전투에서 빠져버린다. 그가 그토록 강력한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거부한 이유는 단지 자존심이 다쳤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는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는 ‘나의 감정’을 먼저 고려하는 인간이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영웅’이라는 이상적 역할에서는 이탈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도 완전히 책임을 져버린 인물은 아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그는 전장에 복귀한다. 이는 단지 친구의 복수를 위한 감정 폭발이라기보다, 어느 정도 책임 의식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으로 인해 친구를 잃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이를 행동으로 전환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결정 기준은 ‘개인적 감정’이며, 공동체 전체를 위한 의무감보다는 사적인 복수의 의미가 강하다. 결국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책임’이라는 키워드 앞에서 완전히 상반된 위치에 선다. 헥토르는 죽음을 알면서도 공동체를 위해 싸우는 존재이고, 아킬레우스는 상처받은 자존심과 감정에 따라 싸움에 나서거나 물러선다. 이 차이는 곧 고전문학이 우리에게 묻는 본질적 질문,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각기 다른 대답을 제공한다.
명예의 길: 전통적 영웅상 vs 개인적 이상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명예’는 개인의 존재 가치를 정의하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영웅에게 명예는 단순한 칭송이나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삶의 의미 그 자체였다. 이 점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모두 ‘명예’라는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으나, 그 해석과 실천 방식은 매우 다르다. 헥토르에게 명예는 공동체 안에서 부여되는 것이다. 그는 트로이의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기억할지, 가족이 어떤 고통을 받을지, 도시가 어떤 운명을 맞을지를 깊이 고민한다. 이러한 점에서 헥토르의 명예는 철저히 ‘타인을 위한 명예’다. 그는 자아 실현보다, 누군가의 기대와 신뢰에 부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의 전장은 개인의 명성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공동체의 벽을 지키는 자리’다. 반대로 아킬레우스는 명예를 보다 ‘개인적인 이상’으로 해석한다. 그는 신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이미 예언받았다.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하나는 오래 살지만 평범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짧은 생이지만 영원한 명예를 얻는 삶이다. 그는 후자를 택한다. 이 선택은 아킬레우스가 명예를 공동체적 개념이 아닌, ‘영원한 나의 이름’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죽음을 감수하면서도 전장에 나아가는데, 그 동기는 공동체 보호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명예 해석의 차이는 결국 두 인물의 행동 양식에도 명확히 드러난다. 헥토르는 싸움 그 자체보다도 싸움이 가져올 결과를 고려하며, 그것이 자신의 명예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그는 패배하더라도, 끝까지 도시와 가족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한다. 이는 ‘자기희생적 명예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아킬레우스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기억될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자기강화적 명예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대비는 고전 영웅상에 대한 다층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헥토르는 인간적인 한계 속에서도 명예를 추구한 인물이며, 아킬레우스는 신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명예를 창조한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용기 있는 영웅이지만, 그 용기의 기초가 전혀 다르다. 헥토르는 의무를 통한 명예, 아킬레우스는 개인 의지와 이상을 통한 명예를 추구한다. 고대 독자들에게는 둘 다 경외의 대상이었겠지만,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헥토르의 명예관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명예’라는 키워드는 두 인물의 용기를 가장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하나는 공동체 중심의 도덕적 용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아 중심의 존재론적 용기이다.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각각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수용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감정이라는 불확실성 속에서의 선택
용기를 단지 전장에서의 행동이나 외적 결단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일리아스』에서 가장 강조되는 인간성의 측면은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인간을 고귀하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파멸로도 이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는 이 감정이라는 불확실한 힘 앞에서 각기 다른 선택을 하며, 그것이 곧 용기의 형태로 이어진다. 아킬레우스는 감정의 극단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분노, 사랑, 슬픔, 복수심을 모두 경험하며, 그것을 억제하지 않고 표출한다. 특히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이후 그가 보여주는 슬픔은 단지 복수심에 불타는 전사의 분노가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실의 절규다. 그는 그 고통을 가슴에 안고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질질 끌며 분노를 해소하려 하지만, 결국 감정은 더욱 깊은 공허와 죄책감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감정의 폭발과 후회는 아킬레우스가 단지 영웅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감정에 지배당하면서도, 그 감정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 특히 프리아모스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며 찾아왔을 때, 아킬레우스는 비로소 감정을 ‘공감’이라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이는 감정을 파괴의 도구가 아닌, 회복과 용서의 도구로 활용한 순간이다. 반면 헥토르는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으로 다스리는 인물이다. 그는 안드로마케와의 작별 장면에서도 감정을 절제하며, ‘전사로서의 의무’를 강조한다. 그는 분노하거나 눈물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의 결단을 조용히 수행한다. 이와 같은 절제는 현대적 관점에서는 ‘감정의 회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고전적 맥락에서는 용기의 중요한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감정을 통제함으로써 용기를 증명한다.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헥토르는 감정을 통제하며 용기를 실현하고, 아킬레우스는 감정을 경험하고 난 후 용기를 발견한다. 한 명은 감정 이전에 용기를 선택하고, 다른 한 명은 감정을 통해 용기에 도달한다. 이 차이는 고전문학이 제시하는 ‘인간다움’의 정의를 보다 넓고 깊게 만들어준다. 결국 감정은 용기의 적도, 동반자도 될 수 있다. 헥토르는 감정을 넘어선 선택을 통해 용기를 실천했고, 아킬레우스는 감정에 휘말렸으나 그 끝에서 진정한 용기의 의미를 찾아냈다. 두 인물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용기가 반드시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마주하는 태도’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는 고대 문학 속 두 개의 다른 ‘용기’ 모델을 보여준다. 헥토르는 책임과 공동체 중심의 용기, 아킬레우스는 감정과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용기를 대표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대비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내면과 선택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고통과 두려움, 감정과 의무 속에서 이들이 보여준 용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