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문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클레오스(Kleos)’는 죽은 후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영원한 명예를 뜻합니다. 반면, 북유럽 신화 및 바이킹 문화에서의 ‘노스(Norse)’ 명예는 신과의 계약, 용기, 충직함 등 행동 중심의 실천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이 글에서는 서사시 문학과 신화적 가치 속에서 드러나는 클레오스와 노스의 명예관 차이를 분석하며, 현대 사회가 이 고대 개념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살펴봅니다.
운명
‘클레오스’ 개념을 이해하려면 고대 그리스인들이 바라본 ‘운명(Fate)’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영웅들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종종 ‘모이라(Moira)’라 불리는 운명의 실에 의해 행동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생사여탈권이 신들 혹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고대 그리스의 운명론에 기반을 둔 것입니다. 특히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나가면 명예를 얻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고, 전장에 나가지 않으면 오랫동안 살 수 있지만 명예를 잃는다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그는 결국 명예를 선택하고 전장에 나섭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전투의 묘사를 넘어, 인간이 운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운명은 그저 피할 수 없는 절대적 규칙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처럼 제시됩니다. 하지만 이 선택이 가져올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클레오스를 추구하는 영웅은 운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완성’해 가는 존재입니다. 이는 노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바이킹 전사들의 ‘필연적 전사’ 운명과도 유사한 면모를 보입니다. 하지만 클레오스는 결과적으로 ‘기억’에 방점을 둡니다. 즉, 명예롭게 죽은 자는 후세에 의해 계속해서 말해지는 존재가 되며, 이 구전은 곧 불멸성을 의미합니다. 운명은 공동체의 이상을 구현하는 틀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명예롭게 죽는 것이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가치와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클레오스를 획득한 자는 공동체의 기억 속에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남으며, 그 명예는 후세의 기준이 됩니다. 이 점에서 클레오스는 단지 개인적 명예를 넘어서, 공동체의 규범과 도덕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로 작동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운명론은 현대의 시각에서 볼 때 다소 결정론적이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요소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호메로스가 단순히 인간은 운명의 꼭두각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끝을 향해 어떤 태도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클레오스는 ‘운명에 맞서 싸운 자’, ‘운명을 수용하며 삶을 의미 있게 완성한 자’에게 부여되는 영예입니다. 이러한 운명관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뿐 아니라 오늘날의 삶에도 통찰을 제공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하는 것이 진정한 명예라는 점은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입니다. 운명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운명 속에서 빛나는 선택을 하려는 자세야말로 클레오스를 실현하는 길이 아닐까요.
자유의지
운명과 대립되는 개념인 자유의지는 클레오스와 노스 명예관에서 각각 다르게 해석됩니다. 호메로스 서사에서 자유의지는 일정 부분 제한된 선택의 자유로 제시되며, 클레오스는 그 선택의 결과로 주어지는 보상 또는 형벌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장에 나선 것은 그의 자유의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고, 이 선택은 그가 누구였는지를 정의하게 됩니다. 즉, 클레오스는 자유의지의 행사가 운명과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운명의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노스 명예관에서 자유의지는 더욱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을 띱니다. 바이킹 사회에서 명예는 현재의 행동을 통해 증명되는 것으로, 개인은 매 순간 자신의 선택을 통해 명예를 쌓거나 잃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신 앞에서의 충직함, 전우와의 의리,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 등 실천적 도덕으로 구체화되며, 자유의지는 인간의 윤리적 자율성을 상징하는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명예는 타인의 평가나 구전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되는 자기 확신과 떳떳함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클레오스와는 방향성이 다릅니다. 노스 신화에서의 인물들은 대부분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는 그리스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그 운명에 맞서는 태도는 훨씬 더 의지적이고 도전적입니다. 라그나로크와 같은 세계 종말의 날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들과 전사들은 그 운명에 끝까지 저항하고 전투에 임합니다. 이는 자유의지를 행사함으로써 비록 결과는 바꿀 수 없더라도,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노스 명예는 바로 이 실천적 자유의지에서 출발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유의지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이 곧 정체성을 결정하며, 타인의 인정보다 자신의 만족과 기준이 삶을 이끌어갑니다. 이런 관점에서 노스 명예는 현대적인 윤리관에 더욱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은 외부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규범과 철학에 따라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이는 책임과 결단이 동반되는 자유의지의 실현을 의미합니다. 요약하자면, 클레오스는 제한된 선택 속에서 최선을 다한 자에게 주어지는 불멸의 기억이며, 노스 명예는 매 순간의 올바른 선택과 실천을 통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자율적 윤리입니다. 두 개념 모두 자유의지를 존중하지만, 클레오스는 그 선택의 결과가 타인의 기억 속에 남는다는 데 의미가 있고, 노스 명예는 그 선택의 순간 자체가 삶의 본질임을 강조합니다.
트로이
트로이는 클레오스 개념이 가장 극적으로 실현된 장소이며, 동시에 노스 명예관과 대조되는 서사적 무대이기도 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웅들의 명예 쟁취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클레오스를 향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트로이는 단지 도시국가가 아니라, 신과 인간, 운명과 자유의지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싸우는 영웅들은 대부분 자신의 명예를 위해 생명을 걸며, 그들의 선택은 결국 기억의 대상으로 남게 됩니다. 트로이 전쟁의 주요 인물들—아킬레우스, 헥토르, 파트로클로스 등—모두 클레오스를 획득하거나 그것을 잃는 과정에 서 있습니다. 특히 헥토르는 자신의 가족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죽음을 알면서도 전장에 나아가고, 이는 클레오스가 단순한 자기 영달의 수단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반면 파리스처럼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인물은 명예를 얻지 못하고, 이야기를 통해 반면교사로 기억됩니다. 트로이는 클레오스의 조건들이 실현되는 공간일 뿐 아니라, 그 조건들이 검증되는 시험대이기도 합니다. 영웅은 단순히 용맹하기만 해서는 클레오스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공동체의 이상을 대표해야 하고, 개인적 이익보다 공적 명예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따라서 트로이는 클레오스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실험장’이라 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의 행위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닌 문화적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노스 명예관에서의 전쟁은 이와는 다소 결이 다릅니다. 바이킹 사회에서 전쟁은 개인의 명예를 증명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기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과의 계약을 이행하는 수단이었습니다. 트로이처럼 집단 전체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의미를 가지기보다는, 신 앞에서 자신의 운명을 실현하는 장소로 기능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클레오스가 ‘남겨지는 것’이라면, 노스 명예는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갈라집니다. 결국 트로이는 클레오스라는 개념이 가장 명확하게 구체화되는 무대이며, 명예를 쫓는 인간의 욕망과 가치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이 도시에서 벌어진 전쟁은 단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윤리, 철학, 사회적 이상이 뒤섞인 복합적인 상징입니다. 클레오스를 이해하려면 트로이를 이해해야 하며, 이는 노스 명예와의 비교를 통해 더욱 뚜렷해집니다. 기억될 만한 행위와 지금 올바르게 사는 삶—이 두 가치의 충돌과 공존이 바로 트로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클레오스와 노스의 명예관은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에서 출발했지만, 공통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합니다. 클레오스는 후세의 기억을 통해 삶을 초월한 가치를 추구했고, 노스는 현재의 행동과 책임을 통해 진정한 삶을 완성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관점을 통해, 삶의 방향성과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억될 삶’과 ‘떳떳한 삶’, 그 둘 모두가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