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된 고대 도시 ‘트로이’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는 수천 년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서 ‘트로이’는 ‘일리오스(Ilion)’ 또는 ‘일리움(Iliu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히타이트 제국의 기록에서는 ‘윌루사(Wilusa)’라는 유사한 지명이 등장합니다. 과연 이 이름들은 동일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니면 서로 다른 도시를 지칭하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트로이’라는 이름의 역사적 변천사와, ‘일리오스’, ‘윌루사’라는 명칭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문헌에서 등장하며, 왜 그것이 트로이 유적과 연관되었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트로이와 일리오스: 고대 그리스 문헌 속 지명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 서사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시입니다.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는 트로이를 ‘일리오스(Ilion, Ἴλιον)’ 혹은 ‘일리움(Ilium)’이라고 부르며, 이 명칭은 트로이의 또 다른 공식 지명으로 여겨졌습니다. ‘일리오스’는 트로이 성의 내부 도시 혹은 왕성(王城)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때로는 트로이 전체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이 명칭은 트로이 왕조의 시조인 ‘일로스(Ilus)’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신화에 따르면 일로스는 도시의 창건자이며, 그가 세운 도시가 그의 이름을 따 ‘일리오스’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따라서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고대 이름이자 그 문명의 상징적인 중심지를 의미하며, 문학적으로도 큰 상징성을 갖습니다. 또한 ‘일리움’은 라틴어화된 형태로, 로마시대에는 트로이를 일리움이라고 불렀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는 트로이 패망 후 아이네아스가 로마를 건국하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로 인해 트로이(일리움)는 로마의 정신적 선조로 간주되었습니다. 실제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이 트로이의 후손임을 자처했으며, 트로이의 유산을 로마 문화에 통합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트로이=일리오스=일리움이라는 등식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졌으며, 서구 문명의 시조 신화로서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일리오스가 실존했던 도시인지, 그리고 그 지명이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고고학적 발굴 이전까지는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윌루사(Wilusa): 히타이트 제국의 기록 속 고대 도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고고학자들은 현재의 터키 북서부 히사를릭 언덕에서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그 실제 존재 가능성을 입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사실은 20세기 중반 이후 해독된 히타이트 제국의 점토판 문서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고대 아나톨리아 제국은 기원전 17세기부터 12세기까지 소아시아 지역을 지배했으며, 남긴 방대한 점토판에는 다양한 도시 이름과 외교 문서, 조약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 특히 주목할 만한 도시 이름이 바로 ‘윌루사(Wilusa)’입니다. 이 이름은 히타이트어로 기록된 문서에 수차례 등장하며, 히타이트와 그 외부 세력 간의 외교 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많은 학자들은 ‘윌루사’가 그리스어 ‘일리오스’와 언어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특히 인도유럽어족 언어 변천 규칙에 따르면, 히타이트어의 ‘W’음은 그리스어에서 종종 생략되거나 변화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Wilios’ → ‘Ilios’로의 변형은 충분히 자연스럽다는 언어학적 분석도 있습니다. 또한 히타이트 문헌에는 윌루사의 왕 ‘알락산두(Alaksandu)’가 히타이트 왕과 조약을 맺은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인물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나타나는 ‘알렉산더(Alexandros)’와 동일인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물론 완전한 동일성은 확정할 수 없지만, 유사한 이름과 시대, 지역을 감안할 때 윌루사가 트로이일 가능성은 더욱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에서 발견된 문서들에는 윌루사가 아히야와(Ahhiyawa), 즉 그리스 지역 세력과 갈등을 겪은 기록도 나옵니다. 아히야와는 ‘아카이아인(Achaeans)’으로, 호메로스가 그리스 연합군을 지칭할 때 사용한 표현과 일치합니다. 즉, 윌루사와 아히야와 간의 충돌은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이러한 언어학적, 고고학적, 역사문헌적 자료들은 윌루사가 트로이, 즉 일리오스와 동일한 도시일 수 있다는 학설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이 이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가장 유력한 후보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리오스 vs 윌루사: 명칭 비교와 고고학적 의미
일리오스와 윌루사라는 두 이름은 역사적 배경과 언어, 사용 시기에 따라 각기 다르게 사용되었지만, 오늘날 고고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 둘이 동일한 도시를 지칭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두 이름의 비교를 통해 각각의 의미와 차이점, 공통점, 그리고 그것이 학문적으로 갖는 함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언어적 기원에서 일리오스는 그리스어, 윌루사는 히타이트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일리오스는 트로이 신화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일로스’라는 인물명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문학과 신화에서 중심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윌루사는 외교 문서와 조약, 군사 활동 등의 현실 정치 문맥에서 등장하는 실용적 지명입니다. 시기적으로도 윌루사의 기록은 주로 기원전 13~12세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트로이 VIIa층의 파괴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이 층은 불에 탄 흔적과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 층을 트로이 전쟁과 연관 짓습니다. 따라서 윌루사가 존재했던 시기와 트로이의 붕괴 시기가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도 두 지명이 동일 도시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지리적으로도 히타이트 문헌 속 윌루사의 위치는 서부 아나톨리아, 즉 오늘날의 터키 북서부로 추정되며, 이는 히사를릭의 트로이 유적과 일치합니다. 특히 히타이트 문서에서 윌루사는 ‘세하 강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현재의 카즈 다그 산맥 인근 지역과 일치하며, 트로이 유적의 위치와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학자가 이 동일성을 수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부 학자들은 ‘윌루사=일리오스’ 가설이 언어학적으로 약간의 무리가 있고, 지리적 해석도 주관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트로이 전쟁이 신화적 과장이 덧붙여진 이야기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윌루사를 트로이로 단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고고학자들과 고대사 연구자들은 윌루사가 일리오스, 즉 트로이와 동일하다는 학설에 무게를 두고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이 명칭 비교는 단순히 지명의 일치를 넘어서, 고대 세계의 상호작용, 정치 구조, 문화 교류, 그리고 문명의 전파 방식까지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줍니다. 이처럼 일리오스와 윌루사라는 명칭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각각의 문명이 어떻게 자신들의 세계를 인식하고 기록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문학과 현실, 신화와 역사, 그리고 언어와 정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고대 문명의 실체를 보다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트로이의 진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마도 완전히 확정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리오스와 윌루사라는 이름을 통해 우리는 고대 도시의 복잡한 정체성과 그 문명의 흥망성쇠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역사 해석과 문화 정체성에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