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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 vs 오디세이: 신의 이중성 비교

by 집주인언니 2025. 11. 1.

일리아드 vs 오디세이 신의 이중성 비교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 문학의 양대 서사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인간과 신의 복잡한 관계를 중심에 두고 전개됩니다. 이 두 작품은 각각 전쟁과 귀환이라는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공통적으로 신의 존재는 인간의 운명에 깊숙이 개입하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써 특정한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신들이 인간을 “돕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실제로는 간섭하고 조종하며, 때로는 인간의 고통과 죽음을 감상하거나 이용하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점입니다. 본문에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속 신들의 이중성을 비교 분석하고, 그들이 인간을 돕는다는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의도와 결과에 대해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고대 문학 속 신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인간 중심 서사의 철학적 함의를 해석하고자 합니다.

일리아드 속 신의 도움이라는 이름의 개입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배경 안에서 인간 영웅들의 갈등, 분노, 복수, 죽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서사의 진행 과정에서 신들의 개입은 매우 빈번하며 때로는 직접적인 전투 지원까지 이뤄집니다. 그러나 신들의 이 개입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 신의 사적인 감정과 목적이 깊게 반영된 행동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파리스의 심판 장면입니다. 에리스가 던진 황금사과 사건 이후,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각자 자신을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인정받고자 인간 파리스에게 뇌물을 제시합니다. 결국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는 약속으로 파리스를 설득하며 심판에서 승리하고, 그 결과 헬레네의 납치와 트로이 전쟁의 발발이라는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건에서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위해 인간의 삶을 희생시키는 명백한 조작을 저지릅니다. 도움은커녕, 인간의 삶을 자신의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 셈입니다. 이후 전개되는 전쟁 과정에서도 신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지지하는 편의 전투에 개입합니다. 제우스는 공정한 심판자처럼 행동하려 하지만, 테티스의 청을 받아들이고 아킬레우스의 전투 복귀를 용인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리스 군의 우위를 허락합니다. 아폴론은 트로이 편에 서서 질병을 퍼뜨리고, 전투에 직접 개입해 아카이아인들을 약화시킵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를 돕고, 헤라는 제우스를 속여 전투의 흐름을 바꾸려 합니다. 이처럼 신들은 겉으로는 인간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감정, 경쟁심, 혹은 신들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들의 ‘도움’은 사실상 자신들의 체면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작’의 다른 이름인 셈입니다. 헥토르의 죽음 장면에서도 신의 개입은 아이러니하게 작용합니다. 헥토르는 트로이의 수호자이며 정의로운 전사로 그려지지만, 그를 지지하던 신들은 그의 마지막 순간에 침묵합니다. 아폴론은 그를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며, 제우스는 헥토르의 죽음을 허용합니다.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에게 처참히 죽임을 당하며, 그의 시신은 모욕당합니다. 신은 헥토르를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는 아무런 실질적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도 신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제우스는 그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지만 개입하지 않으며, 아폴론은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실제로 개입합니다. 이처럼 신들은 도움과 방관, 조작과 침묵 사이에서 선택적으로 인간을 다루며, 영웅들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게임을 지속합니다. 결국 『일리아드』에서 신의 도움은 진정한 자비나 정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쟁과 감정, 이익에서 비롯된 선택적 개입입니다. 인간은 신의 전장에서 기껏해야 전략적 말일뿐이며, 신의 '도움'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 조정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디세이 속 신의 보호라는 이름의 통제

『오디세이』에서는 전쟁이 끝난 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립니다. 이 작품은 『일리아드』보다 인간 중심 서사의 경향이 더 강하지만, 여전히 신의 개입은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아테나의 등장은 매우 두드러지며, 그녀는 전쟁의 여신에서 지혜와 전략의 수호자로 변모하여 오디세우스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아테나의 보호는 언제나 온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그녀는 오디세우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설계하거나 유도하며, 그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통제합니다. 예를 들어, 이타카에 도착한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구혼자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울 때, 아테나는 그를 도와주는 동시에 자신이 그 상황을 설계하고 있다는 암시를 남깁니다. 오디세우스는 마치 자신의 선택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테나의 시나리오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칼립소의 섬에서 오디세우스가 갇혀 있을 때,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보내 칼립소에게 오디세우스를 놓아주라고 명령합니다. 이 장면은 일견 오디세우스를 해방시키는 ‘자비’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이 신의 세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고, 다시 신이 허락한 ‘질서의 세계’로 복귀시키려는 강제적인 통제가 깔려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일정한 질서 내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제한이 부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디세이』에서 가장 상징적인 침묵의 장면은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구혼자들의 반응을 관찰하며 복수의 순간을 준비하는 시점입니다. 아테나는 이 과정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디세우스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이 자신의 계획에 맞는지를 점검하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 나아가, 세이렌의 노래를 피하는 장면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자신과 선원들의 귀를 막거나 묶게 하며 ‘자기 통제’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준비도 아테나가 미리 주입한 정보에 따라 움직입니다. 즉, 인간의 선택은 철저히 신의 정보 제공과 제한된 조건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으며, 그 자유는 항상 ‘신의 가이드라인’ 안에 있습니다. 이처럼 『오디세이』 속 신은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하면서, 본질적으로는 질서와 통제를 우선시하는 존재입니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자율적 도전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흐름은 신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전개됩니다. 신은 직접 나서기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선택’이라 믿게 만드는 방식으로 개입합니다. 이는 신이 진정한 후원자가 아니라, 통치자이자 조정자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신의 개입,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신의 개입과 그 이면을 보여주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신의 행위는 인간을 진심으로 돕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질서 유지, 감정 해소, 혹은 권위의 재확인이라는 목적에 부합한 것입니다. 『일리아드』에서의 신은 전투와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고, 인간의 고통을 이용해 힘의 균형을 맞춥니다. 제우스는 감정을 조율하며 전체 질서를 유지하려 하고, 아프로디테와 아폴론은 감정적으로 특정 진영에 개입하면서 인간의 삶을 장기판처럼 다룹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죽음은 슬프지만, 더 이상 감정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필연적 희생'일 뿐입니다. 『오디세이』에서는 신이 좀 더 질서와 조화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인간은 혼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듯하지만, 그 모든 혼란은 사실 신의 허용된 시나리오 안에서 일어납니다. 인간이 귀향하고 재회를 이루는 감동적 결말은 실은 신이 의도한 ‘질서 회복’의 상징적 장면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두 작품 모두 신은 ‘돕는 존재’라기보다는 ‘설계자’ 혹은 ‘조정자’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며, 인간이 신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결국, 신은 인간을 보호하거나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운명에 개입하고, 인간의 감정을 자신의 목적에 활용합니다. 신의 개입은 인간을 위한 듯하지만, 실제로는 신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종속된 존재로, 신의 감정과 계획에 따라 움직입니다. 호메로스는 이를 통해 신이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님을 보여주고, 인간이 그 속에서도 어떻게 자율성을 찾고, 운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신이 인간을 돕는다는 환상을 걷어내고, 그 이면의 조종과 통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신은 결코 순수한 구원자가 아니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이기적이고 정치적인 존재입니다. 호메로스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지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신의 권위에 질문을 던지는 인간 중심 서사의 초석을 마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