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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 vs 오디세이 (문체, 언어, 사고 비교)

by 집주인언니 2025. 9. 29.

일리아드 vs 오디세이 (문체, 언어, 사고 비교) 관련 사진

서양 고전문학의 뿌리를 이루는 대표적인 두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이들은 언어와 문체, 서사 구조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까지도 명확히 대조되는 작품입니다. 본 글에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언어적 구조, 문체적 스타일, 그리고 철학적·사고적 배경에서 깊이 있게 비교하여 그 차이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 문학과 사유의 깊이를 조명합니다.

1. 일리아드의 문체적 특징과 전통적 사고방식

『일리아드』는 기원전 8세기경의 고대 그리스 구술 전통에서 유래한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의 최후 시점을 배경으로 인간과 신, 명예와 운명, 분노와 화해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작품은 단지 전쟁의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당대 그리스 사회의 철학적 기반과 문학적 형식을 집약한 하나의 세계관입니다.

▷ 반복과 수사적 정형화
이 작품은 오랜 구술 전통 속에서 전해진 만큼, 일정한 반복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발 빠른 아킬레우스” 또는 “구름을 거느리는 제우스”와 같은 에피켓(epic epithet)은 여러 등장인물의 수식어로 반복 사용되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연자(rhapsode)의 기억을 돕는 기능을 합니다. 이 반복적 수사법은 리듬감을 강화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장면을 시각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합니다.

▷ 엄격한 운율과 형식성
『일리아드』는 대체로 헥사메터(6운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각 행이 여섯 개의 음절 단위로 나뉘며, 서사시에 흔히 사용되는 정형 운율입니다. 이처럼 규칙적인 운율은 그리스 구술 시인의 기억력에 의존했던 서사 전달 방식에 최적화된 형식이었습니다.

▷ 명예와 운명 중심의 사고
『일리아드』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명예(티메, τιμή)입니다. 전사들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며, 영웅의 죽음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평가됩니다. 이는 신과 인간 사이의 운명 개념과도 연결되며,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moira, μοῖρα)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한 이름(클레오스, κλέος)을 얻습니다. 이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집단 가치와 운명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으로, 당시 사회의 전통적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 집단주의적 사고 구조
이 작품에서는 ‘개인’보다는 ‘영웅 집단’과 ‘공동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인물의 감정이나 내면보다는 외부에서 관찰되는 행동, 그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평가가 더 중요합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개인적 감정이지만, 그것이 공동체 전쟁의 운명을 결정짓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2. 오디세이의 내면적 언어와 전략적 사고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귀환하는 여정을 다루는 서사시입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모험 이야기지만,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자아 탐색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회복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내면 중심의 서사입니다.

▷ 플롯 구조의 유연성
『오디세이』는 서사 구조 자체가 매우 복합적입니다. 선형적이던 『일리아드』에 비해, 『오디세이』는 회상, 삽화, 다양한 시점 변화로 구성됩니다.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모험을 페니아키아인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은 대표적인 플래시백 서술로, 작중 인물이 화자로 전환되어 이야기를 서술하는 점에서 고대 서사시로는 상당히 혁신적인 구성을 보여줍니다.

▷ 언어와 문체의 인간 중심성
오디세우스는 힘보다는 지혜, 용맹보다는 인내를 중시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폴리트로포스(polytropos)’ — 즉, ‘다방면의 꾀와 변신에 능한 자’라는 수식은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성격은 대화 중심의 문체, 상대방을 설득하는 논리적 표현, 감정 묘사의 섬세함으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세이렌의 노래를 피하기 위해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돛대에 묶게 하는 장면은 오디세우스의 전략적 사고와 자기 통제 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적 영웅상과는 달리, 인간의 내면과 심리,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영웅상입니다.

▷ 다양성과 타문화에 대한 탐색
『오디세이』에는 그리스 이외의 문명, 괴물, 신화적 존재들이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키클롭스, 키르케, 세이렌,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등은 모두 낯선 세계와 문화를 상징하는 요소입니다. 이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고대 그리스 사회가 외부 세계에 대해 가졌던 상상력과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만남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항상 자신의 ‘이타카’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체성의 중심을 붙잡고자 합니다.

▷ 자아 정체성의 탐구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계속해서 직면합니다. 귀환이 단순한 물리적 복귀가 아닌, 사회적·정서적 복원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디세이』는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심리적 서사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이는 문체적으로도 보다 개인적인 어조, 감정 묘사, 철학적 대화를 통해 구현됩니다.

3. 두 서사시의 사고방식 비교: 운명과 자아의 인식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인간 존재와 운명, 자아에 대한 인식입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플롯이나 문체 수준을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의 차이로 귀결됩니다.

▷ 운명에 대한 태도
일리아드: 인간은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존재이며, 운명은 신의 계획 안에서 불변합니다. 영웅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도 명예를 위해 전쟁터로 나아갑니다.
오디세이: 운명은 일정한 틀이 있되, 인간은 지혜와 의지로 그것을 넘어서거나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귀환이라는 큰 틀 안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선택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합니다.

▷ 인간에 대한 이해
일리아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집단의 가치(명예, 전통)를 구현하는 매개체입니다. 개인적 감정보다 사회적 위치와 평가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오디세이: 인간은 복합적 존재로서 내면적 성찰과 감정, 기억, 선택의 주체입니다. 이야기는 그의 ‘내면 세계’를 통해 진행됩니다.

▷ 문체로 드러나는 사고방식
『일리아드』의 문체는 반복과 상징, 상투적 구문이 특징이며, 이는 고정된 사고방식과 보수적 세계관을 뒷받침합니다. 반면, 『오디세이』는 보다 개방적이며, 감정과 논리, 전략이 언어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나며, 인간 내면의 다층적 구조를 반영합니다. 이 차이는 단지 문학적 기법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철학적 시각을 제시합니다. 전통적 질서와 명예를 중시하는 ‘고전주의적 사고’와, 개인의 의식과 경험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사고’가 각각의 서사시를 통해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결론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단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 운명과 자아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을 담고 있는 문학적 정수입니다. 고도로 정형화된 문체와 전통적 사고방식을 통해 고대의 질서를 표현한 『일리아드』는 공동체 중심의 가치와 명예, 운명 수용을 강조합니다. 반면, 보다 유연한 문체와 전략 중심의 서사를 통해 내면과 자아를 탐색하는 『오디세이』는 인간 중심의 사고와 창조적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이 두 작품의 비교는 단순한 텍스트 분석을 넘어,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지적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두 서사시가 학문적, 철학적, 예술적 맥락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문체와 언어, 그리고 세계관의 차이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고전을 진정으로 ‘읽는’ 행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