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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 속 신들이 거짓말을 선택한 이유

by 집주인언니 2025. 10. 28.

일리아드 속 신들이 거짓말을 선택한 이유 관련 사진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과 신의 복잡한 관계, 명예와 욕망, 죽음과 불멸, 진실과 거짓이라는 주제를 교차시키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특히 신들이 보여주는 ‘거짓말’은 단순한 서사 장치가 아니라, 신의 성격, 세계 질서, 인간의 운명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하는 행위입니다. 『일리아드』에서 신들은 자주 거짓말을 하며, 그 거짓은 때로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 인간의 생사를 좌우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집니다. “왜 신은 거짓말을 하는가?” 본 글에서는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신들의 거짓말 사례를 중심으로, 그 동기와 목적, 문학적 의미와 철학적 함의를 심도 있게 분석합니다.

1. 전쟁의 전략가로서의 신: 거짓말은 도구였다

『일리아드』 속에서 신들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자입니다. 그들은 전쟁의 방향을 결정짓고, 병사들의 사기를 조종하며, 주요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들이 사용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입니다. 거짓은 전략의 일부이며, 종종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테나의 개입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어느 날, 아테나는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운명적인 대결을 유도하기 위해 트로이 편에 있던 헥토르를 속입니다. 그녀는 헥토르 앞에 그의 형제인 데이포보스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가 네 곁에서 싸우겠다”고 말합니다. 헥토르는 이 말을 믿고 아킬레우스와 싸우기로 결심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헥토르는 고립된 채 싸우다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하고 죽임을 당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테나는 신의 능력으로 인간을 속이며, 전투의 결과를 조작합니다. 그녀의 거짓은 냉정한 전략으로 기능하지만, 동시에 윤리적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헥토르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신의 거짓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셈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면은 신의 거짓말이 인간 세계의 전술, 정치, 심리전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진실만큼이나 ‘기만’도 중요한 전쟁 기술로 여겨졌고, 신들은 그 기술의 가장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정당성은 끊임없는 논쟁거리로 남게 됩니다.

2. 감정에 휘둘리는 신: 거짓말은 감정 발산의 수단

『일리아드』 속 신들은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며, 분노합니다. 이 감정은 그들의 행위의 중요한 원인이며, 때로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신들이 감정에 휘둘릴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입니다. 감정을 숨기거나, 감정을 통해 무언가를 조작하고자 할 때, 신들은 망설임 없이 진실을 왜곡합니다. 예를 들어, 제우스는 여러 차례 헤라에게 자신의 계획을 숨기거나 왜곡된 정보를 줍니다. 그는 헤라가 전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거짓으로 회유하거나, 자신의 개입이 없었던 것처럼 위장합니다. 이는 부부 간의 권력 다툼이자 감정 싸움으로, 인간 관계의 연장선상처럼 묘사됩니다. 제우스는 전쟁의 신성한 조율자이지만, 그의 언어는 정치적이며 감정적으로 복잡하게 엉켜 있습니다. 또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게 만드는 데 있어 그의 감정을 자극하고, 사랑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상황을 왜곡합니다. 이는 감정을 이용한 조작이며,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사실상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됩니다. 그녀는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정을 우선하며 인간을 속입니다. 이러한 신들의 감정 기반 거짓말은 인간의 윤리적 기준에서 본다면 명백히 비도덕적입니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신들을 ‘완벽한 존재’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인간보다 더 감정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의 거짓이 신의 신비성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아닌, 신과 인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임을 암시합니다.

3. 존재론적 관점에서 본 신의 거짓말: 운명의 조율자 역할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에서는 신이 운명을 지배하거나, 최소한 운명의 흐름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때 ‘거짓말’은 단지 기만의 도구가 아니라, 운명을 조작하거나 예정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의 기술’로 작동합니다.

제우스는 신들 중에서도 가장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려는 존재로 묘사되지만, 그는 자신의 판단과 운명의 균형 사이에서 종종 고뇌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거짓 혹은 침묵이라는 방법으로 그 균형을 유지하려 합니다. 예컨대, 제우스는 신들이 트로이 전쟁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않고, 전략적 침묵이나 모호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적극적인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의도적 회피'이며, 운명을 인위적으로 관리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의 거짓말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예정된 ‘큰 틀’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시점에서는 거짓처럼 보이지만, 신의 시점에서는 ‘조정’일 수 있다는 다층적 의미가 발생합니다. 특히 아테나의 행동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그녀는 거짓말을 통해 헥토르를 전투로 유인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트로이의 패망’이라는 신탁이 실현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아테나의 거짓은 비윤리적인 동시에 운명의 일부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결론: 신의 거짓말, 비윤리인가 필연인가?

『일리아드』 속 신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략적, 감정적, 존재론적, 운명론적 동기와 얽혀 있으며, 고대 그리스의 신관과 세계관을 반영합니다. 신의 거짓은 인간 세계의 전쟁과 감정, 질서와 혼란을 조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비도덕적이고 불안정한 존재로 그려지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호메로스가 이러한 신의 거짓을 통해 인간의 도덕성과 선택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킨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신의 거짓과 개입 속에서도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윤리적 결단을 내리며, 죽음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는 거짓 속에서도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상징합니다. 결국 신의 거짓은 고대 서사 속에서 인간의 고통과 혼란을 심화시키는 요소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공하는 철학적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진실은 항상 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신의 거짓을 넘어서는 인간의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가, 『일리아드』가 수천 년 동안 읽혀온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