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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 속 신과 인간, 공통점과 차이

by 집주인언니 2025. 9. 26.

일리아드 속 신과 인간, 공통점과 차이 관련 이미지

『일리아드』는 호메로스가 지은 고대 그리스의 대표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는 인간의 용기와 비극, 명예뿐만 아니라, 신들의 개입과 감정 또한 생생하게 묘사되며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듭니다. 특히 이 서사시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신들이 인간처럼 사랑하고, 질투하고, 분노하며, 때로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들과 매우 유사한 감정 구조와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글에서는 『일리아드』 속에서 신과 인간이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를 지니는지를 중심으로 작품을 재조명하고, 이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인간관과 신관이 어떠했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1. 감정의 공유: 신도 사랑하고 질투한다

『일리아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바로 감정입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신'이라고 하면 흔히 초월적인 존재, 무감정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신들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심지어 분노에 사로잡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과 신의 감정 구조가 유사하다는 점을 보여주며, 고대인들이 신을 어떻게 상상하고 이해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여왕 헬레네를 데려오도록 돕습니다. 이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개입이 아니라, 경쟁심과 승부욕, 자신의 권위에 대한 집착까지 포함된 행동입니다. 또 다른 예로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끊임없이 남편의 외도에 분노하며,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채 트로이 전쟁에 깊이 관여하게 됩니다. 그녀는 아카이아 진영이 승리하도록 조작을 시도하고, 전장에서 직접 개입해 신과 인간의 운명을 바꾸려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기보다는 감정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인간적인 존재로서의 신을 보여줍니다. 특히 주인공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인간적인 감정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닌, 사회적 질서와 명예 체계, 정의에 대한 저항과 같은 복잡한 층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곧 신의 분노와도 연결되며, 아폴론이 패트로클로스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장면에서는 이러한 감정의 공유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감정이라는 측면에서 신과 인간은 전혀 다르지 않으며, 오히려 인간적인 감정이 신들의 세계에도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존재는 유사한 본질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리아드』에서는 감정이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작용합니다. 신과 인간의 감정은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입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감정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장치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2. 존재론적 차이: 신은 불사, 인간은 유한하다

『일리아드』에서 신과 인간을 구분짓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죽음’입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반면 신은 결코 죽지 않으며,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분위기와 인간 존재의 본질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설정입니다. 인간은 죽기 때문에 현재를 살아가며, 그 순간의 선택이 절대적인 가치를 갖습니다. 헥토르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명예와 공동체를 위해 전장에 나섭니다. 그는 신이 아님을 알기에,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 합니다. 반면, 신들은 이러한 절박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전쟁이 장기판처럼 느껴질 수 있고, 한 인간의 죽음이 단지 게임의 패배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신들이 인간에 비해 얼마나 무책임하고 때로는 냉정한 존재인지를 드러냅니다. 제우스는 헥토르의 운명을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것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그조차도 ‘운명’이라는 더 큰 질서 아래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도 그것에 순응해야 한다는 무력함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신은 불사의 존재이지만, 절대적인 권능을 지닌 존재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처럼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그 한계가 죽음이 아닌 다른 형태로 나타날 뿐입니다. 또한, 인간의 유한성은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삶을 진지하게 대하며, 매 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이며, 『일리아드』는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반면 신은 영원히 살기에, 현재에 대한 집착이 없으며, 인간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신과 인간이 왜 다르게 행동하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결국, 존재론적인 차이는 인간의 도덕적, 철학적, 문화적 가치체계를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무겁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일리아드』가 인간 중심의 서사로서 오랜 세월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입니다.

3. 역할과 개입의 차이: 신은 조정자, 인간은 실행자

『일리아드』는 신과 인간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은 세계의 질서를 조정하고, 인간은 그 질서 안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 경계는 종종 흐려지며, 신은 인간사에 적극 개입하고, 인간은 그 개입에 반응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조물주-피조물’ 관계를 넘어서, 더 복잡하고 긴밀한 상호작용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신은 때로는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거나 직접 개입하여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테나입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최후의 결투에서 헥토르를 속여 싸움에서 패배하게 만듭니다. 또한 아폴론은 패트로클로스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제우스는 비를 내려 전세를 바꾸는 식으로 자연을 조작합니다. 이처럼 신은 직접적인 개입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입니다. 반면, 인간은 그 모든 개입 속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고 해서 인간의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일리아드』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더 큰 비극성과 위대함을 부여합니다. 패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싸움터로 나가기로 선택합니다. 그는 그 선택이 죽음을 부를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런 행동은 인간을 신보다 더 위대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신은 절대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인간만큼의 도덕적 책임을 지지는 않습니다. 신은 상황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선택에는 생명이 걸려 있고, 그 선택은 공동체에 영향을 미치며, 문명을 형성해 나가는 동력이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신은 단지 배경을 제공하는 존재이며, 진정한 주인공은 인간입니다. 이 구조는 고대 그리스의 인간관을 잘 드러냅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행동과 선택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던 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일리아드』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위대하고, 제한적이지만 자유로운 존재이며, 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도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일리아드』는 단순한 전쟁 서사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고, 신과 인간의 복잡한 관계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의 철학과 신앙, 그리고 도덕관을 드러내는 철학적 서사입니다. 신과 인간은 감정적으로 유사하지만, 존재론적·역할적으로는 명확히 구분됩니다. 신은 불사의 존재이며 조정자이지만, 인간은 죽음을 앞둔 채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그 유한성 속에서 인간은 더 진실되고, 아름다우며, 위대해집니다. 『일리아드』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주어진 삶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