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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본 신의 역할 차이 (복수, 개입, 전쟁)

by 집주인언니 2025. 10. 22.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본 신의 역할 차이 (복수, 개입, 전쟁) 관련 사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양대 서사시로, 서양 문학의 원형이라 불릴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이 두 서사시는 모두 인간과 신의 관계를 중심축으로 삼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신의 역할’에 있어 이 두 작품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룬다. 『일리아드』에서 신은 전쟁의 감정적 개입자이자 복수의 실행자처럼 그려지는 반면, 『오디세이』에서는 운명과 시련의 설계자로서 보다 서사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을 한다. 본문에서는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의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 개입 양상,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차이를 분석해 보며, 고대 그리스 문명의 세계관을 통찰한다.

일리아드 속 신: 감정적 개입과 복수의 연쇄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50일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인간 영웅들의 갈등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신들의 감정과 개입이 이야기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신들은 전지전능한 창조자가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지닌 존재들로 묘사된다. 제우스, 아테나, 아프로디테, 아폴론 등 주요 신들은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나 인간 영웅을 위해 전쟁에 개입하며, 이 과정에서 복수, 질투, 연민, 사랑 같은 감정이 극단적으로 분출된다. 대표적인 예는 아킬레우스와 그의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이야기다.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자, 아킬레우스는 복수를 다짐하며 전장에 복귀한다. 이때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제우스에게 아들의 승리를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제우스는 이에 응한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모욕하며 복수를 완성한다. 하지만 이 복수는 단순한 인간의 행동이 아니라, 신의 개입과 조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일리아드』는 신들이 인간의 감정에 공명하거나 그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은 신의 감정을 더욱 격화시키는 배경이 된다. 아테나는 파리스의 심판에 대한 앙심으로 트로이를 미워하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을 선택한 파리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리스군과 싸운다. 이처럼 감정에 따라 편을 가르고, 인간의 운명을 가볍게 조정하는 신의 모습은, 오늘날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극히 불공정하지만,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스러운 신의 개입으로 여겨졌다. 흥미로운 점은 신들이 인간보다 강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처럼 경쟁하고 시기하며, 자신의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신화의 특징인 '인간화된 신' 개념을 반영한다. 신은 인간보다 뛰어나지만 완전하지 않으며, 인간과 동일한 감정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인간사에 깊숙이 개입한다. 이러한 신들은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운명이나 정의보다는 개인적 충동에 따라 움직인다. 결국 『일리아드』의 신은 이야기의 윤리적 중재자나 전지전능한 재판관이 아니라, 전쟁의 또 다른 참가자이자 감정적 동력이다. 이들은 서사의 긴장을 높이고, 인간의 선택과 행동을 둘러싼 갈등을 증폭시킨다. 전쟁은 단지 인간의 싸움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공동작품이며, 복수는 감정의 순환고리로서 반복된다. 이러한 구조는 고대 사회에서의 전쟁과 신의 개념을 동시에 드러낸다.

오디세이 속 신: 여정을 설계하는 전략적 조정자

『오디세이』는 『일리아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와 주제를 지닌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의 10년간의 여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여정은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시련과 성숙, 정체성의 탐구라는 측면을 내포한다. 이 작품에서도 신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만, 『일리아드』의 감정적 개입자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오디세이』 속 신들은 보다 전략적이고 설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일관되게 돕는 존재로, 단순히 영웅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라, 오디세우스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시련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녀는 오디세우스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판단력을 유지하도록 돕고, 때로는 변장이나 조언을 통해 오디세우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이는 보호자가 아닌, 성장을 위한 '멘토' 역할에 가깝다. 반면,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가 자기 아들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실명시킨 데에 분노하여 그의 귀환을 방해한다. 그러나 이 방해는 『일리아드』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개입과는 다르게,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길고 험난하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로 기능한다. 이러한 포세이돈의 역할은 고전 영웅서사에서 나타나는 ‘영웅의 시련’ 개념과 맞닿아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오디세우스의 귀환이 단순한 여정이 아닌, 내면적 성장의 여정임을 인식하게 한다. 『오디세이』는 모험과 귀환이라는 기본 서사 구조 속에서 신을 ‘서사의 설계자’로 활용한다. 이 신들은 인간의 선택을 시험하고,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자각을 유도하며, 단순한 도움이나 방해가 아니라 이야기의 목적 자체를 완성하는 데 기여한다. 즉, 이 작품에서 신은 인간의 주체성을 완전히 대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존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배경과 구조를 설계하는 존재다. 오디세우스는 여러 신들의 개입 속에서도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한다. 그는 단순히 신의 뜻에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로 상황을 판단하며 여정을 완수한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능동성과 신의 계획이 공존하는 세계관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의 다신교 체계 속에서 신은 전지전능한 통제자가 아니라, 인간의 세계와 함께 움직이는 복합적 존재다.

신의 역할 차이: 전장의 감정적 플레이어 vs 여정의 설계자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들은 동일한 판테온에 속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성격과 주제에 따라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일리아드』에서는 신이 인간처럼 감정을 갖고 복수를 실행하며, 그 감정은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인간의 행동을 직접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때 신은 일종의 플레이어로서 인간 세계에 깊숙이 개입한다. 반면, 『오디세이』의 신들은 감정보다는 구조와 계획, 시련과 통찰의 구조를 짜는 ‘서사의 건축가’로 기능한다. 아테나, 포세이돈, 헤르메스 등 주요 신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설계하며, 그 여정을 통해 인간이 어떤 존재로 성숙할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신들은 인간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험하고, 스스로의 의지로 귀환을 이루게끔 유도하는 존재다.

또한 『일리아드』는 집단적 서사와 전쟁의 파괴를 다루며, 신도 한 진영에 서서 갈등을 증폭시킨다. 반면, 『오디세이』는 개인 서사, 특히 ‘귀환’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며, 신은 인간 개인의 내면 탐구를 돕는 내러티브적 장치다. 이 두 작품은 고대 문학에서 신의 역할이 어떻게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그리스 신화 전반에서 나타나는 신의 이중성, 즉 감정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상징적 존재라는 특성을 반영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단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삶의 여러 양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였다. 신은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운명, 감정, 정의, 질서의 상징이자, 이야기의 구동 장치로 기능했다. 따라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단순한 전쟁과 모험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던 고대인의 깊은 사유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신화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속에 담긴 인간과 신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할 수 있다. 신은 때로 인간의 선택을 뒤흔들고, 때로는 인간이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도록 조력한다. 전쟁터에서는 복수심으로 움직이고, 여정 속에서는 시련과 배움을 설계한다. 이처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조명하며, 그 차이는 곧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이어진다.

결론: 고전 속 신이 말하는 인간의 삶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 사회의 신 개념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신은 이 두 서사에서 단순한 종교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감정의 확대이자, 이야기의 진행자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일리아드』의 신은 감정의 기폭제, 복수의 화신으로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운명을 흔든다. 반면 『오디세이』의 신은 귀환의 조정자, 시련의 설계자로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찾도록 유도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문학적 장치의 차원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 방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전쟁과 감정의 세계에서는 외부로 투사된 격정과 복수가 중심이 되며, 귀환과 여정의 세계에서는 내면으로 향하는 성찰과 정체성의 회복이 강조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신은 인간과 함께 호흡하며, 인간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작품을 통해 고대인의 세계관을 엿보고, 인간과 신의 경계를 다시 묻게 된다. 전능한 신의 명령에 따라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시련 속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귀환할 수 있는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이 고전을 다시 읽으며, 당신만의 해석을 덧붙여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