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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에서 묘사된 전쟁 심리학 (공포, 분노, 상실)

by 집주인언니 2025. 9. 9.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단순한 전쟁 서사를 넘어 인간 본성과 심리를 해부하는 고전입니다. 특히 '운명', '자유의지', '트로이'라는 키워드는 작품 전반을 이끄는 핵심 축으로, 각각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 선택의 딜레마, 그리고 역사적 상처를 상징합니다. 본 글에서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리아드가 전쟁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의 파괴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운명: 신의 결정인가, 인간의 예견된 파멸인가

『일리아드』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개념은 바로 '운명(fate)'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운명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이었으며, 신들조차 그것을 어기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 감정, 신념마저도 운명의 틀 안에서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일리아드』는 이러한 운명을 단지 배경적 요소가 아닌, 이야기의 핵심 동력으로 활용합니다. 대표적인 예는 아킬레우스입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짧지만 영광스러운 삶, 혹은 길지만 무명의 삶. 그는 전쟁터에서 죽을 것을 알지만, 명예를 위해 그 길을 택합니다. 이 선택은 운명과 인간의 자각이 만나는 지점이며, 동시에 인간의 무력함과 위엄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고대 독자에게는 숙명론적 위안을, 현대 독자에게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집니다. 또한 헥토르 역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합니다. 아킬레우스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는 성문 밖으로 나가 싸움을 택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고전적 비극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그 길을 택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진정한 비극이자 영광입니다. 심지어 신들조차 인간의 운명을 바꾸지 못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제우스조차 헥토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만, 그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이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거대한 힘에 의해 규정되어 있으며, 그 속에서 감정을 느끼고 고통을 겪는 것이 오히려 인간성을 증명하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운명'에 대한 묘사는 현대의 전쟁 심리학에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마주하지만, 궁극적으로 생과 사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일리아드』는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매우 정교하게 그려냅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다움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들 속에서 어떻게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가—이 질문에 대한 문학적 답변이 바로 ‘운명’이라는 개념 안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자유의지: 선택은 허상인가, 혹은 인간의 최후의 권리인가

운명이 전제되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일리아드』는 이 딜레마에 깊이 천착합니다. 작품은 끊임없이 인물들의 선택을 통해 서사를 전개하면서도, 그 선택들이 운명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자유의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성의 핵심이자 한계로 그려집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유의지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단지 영웅이 아니라, 분노하고, 고민하고, 철회하고, 후회하는 인간입니다. 그는 아가멤논의 모욕에 분노하여 전장에서 물러나고, 그로 인해 수많은 동료들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선택은 전략적이거나 계산된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 비롯된 본능적인 결정입니다. 그러나 이 감정의 선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입니다. 그는 다시 복귀합니다.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분노와 죄책감 속에 전장으로 돌아옵니다. 이때의 선택은 또 다른 자유의지의 표현이지만, 그 결과는 더욱 참혹합니다. 헥토르를 죽이고, 그의 시신을 능욕하는 행위는 인간 내면의 폭력성이 자유의지라는 이름으로 표출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도 해석 가능합니다.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은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반응에 기반해 행동하게 됩니다. 자유의지는 결코 이성과 도덕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감정, 본능, 과거의 기억 등 복잡한 요인의 산물입니다. 『일리아드』는 이를 정확히 포착합니다. 또한, 헥토르의 경우는 더욱 복잡합니다. 그는 트로이의 왕자이며, 나라와 가족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지 않을 자유도, 죽음을 피할 권리도 이론상 존재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의 자유의지는 공동체의 기대와 도덕적 책임 속에서 끊임없이 억제되며, 이 또한 자유의지의 또 다른 현실적 제약을 보여줍니다. 자유의지는 그 자체로는 영광이나 구원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통이며, 갈등이며, 때로는 파괴를 불러오는 양날의 검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인간입니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인간은 모르기에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존재로 의미를 갖습니다. 『일리아드』는 이러한 인간의 모순된 존재방식을 온전히 수용하며, 자유의지를 영웅주의가 아닌, 인간성의 가장 진실한 표현으로 묘사합니다. 결국 선택은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인간은 가장 빛난다**는 메시지가 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트로이: 도시의 멸망, 인간성의 무덤

『일리아드』의 배경이자, 서사의 중심 무대인 트로이는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이상화된 도시이자, 영웅주의의 시험대이며, 무엇보다 인간성의 붕괴가 극적으로 펼쳐지는 상징적 무대입니다. 트로이는 전쟁의 시작점이자 끝이며, 모든 영광과 비극이 교차하는 장소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헬레네의 납치라는 개인적 사건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결과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역사적 파국입니다. 이 전쟁은 정의나 도덕, 신의 뜻 같은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탐욕, 오만, 자존심, 그리고 복수심에서 비롯된 인간성의 파괴였습니다. 트로이는 이 전쟁의 결과로 무너집니다. 도시가 불타고, 시민들이 학살당하며, 여성들은 노예로 끌려갑니다. 특히 『일리아드』의 마지막 장면에서 헥토르의 죽음을 애도하는 안드로마케의 오열은, 이 전쟁이 단지 왕과 영웅들의 싸움이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의 붕괴를 초래한 비극임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트로이는 또한 인간의 교만(hubris)에 대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영웅들은 트로이를 정복함으로써 명예를 얻으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잔혹함은 결국 그들 자신을 파괴하는 부메랑이 됩니다. 아킬레우스는 분노에 이끌려 시신을 모욕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함락 후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의 고난을 겪습니다. 트로이의 멸망은 전쟁의 승패를 가른 사건이지만, 동시에 인간성과 도덕성의 무너짐을 상징합니다. 도시는 무너졌고, 남겨진 것은 상처와 기억뿐입니다. 이 점에서 『일리아드』는 단순히 한 영웅의 분노와 복수를 다룬 서사가 아니라, 인간 문명이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해가는지를 경고하는 서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현대 전쟁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트로이'를 목격합니다. 도시가 파괴되고, 민간인이 희생되며, 전쟁의 명분 속에서 인간성은 무참히 짓밟힙니다. 트로이는 고대의 허구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일리아드』는 여전히 살아 있는 문학이며, 우리가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의 거울입니다. 트로이는 또한 문학적으로 '기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시작과 끝, 인간의 감정과 이성이 충돌하는 곳, 그리고 무너진 윤리와 희망이 공존하는 장소. 이 모든 복합성을 품고 있는 트로이는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입니다. 트로이가 없다면 『일리아드』도 없고, 그만큼 이 도시는 인간성의 파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입니다. 『일리아드』는 운명의 압박, 자유의지의 고통, 그리고 트로이라는 공간 속에서 인간성의 본질을 고통스럽게 드러냅니다. 고대의 전쟁 이야기가 지금도 강력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심리와 감정, 그리고 도덕적 고민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인가, 아니면 신의 장난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