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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오디세이 속 인간 고통과 신의 태도

by 집주인언니 2025. 10. 24.

일리아드·오디세이 속 인간 고통과 신의 태도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단순한 신화나 전쟁 이야기 그 이상을 품고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특히 인간의 고통이 신의 개입 또는 무관심, 혹은 심지어 유희적 태도로 인해 더욱 복잡한 구조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신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섬세하게 대비시켜 고대 세계관 속에서의 윤리, 운명, 존재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본 글에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고통이 어떻게 표현되며, 이에 대해 신들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분석하고, 그 철학적, 문학적 함의를 깊이 있게 고찰하고자 합니다.

1. 『일리아드』: 전쟁 속 인간 고통과 신의 방관 또는 개입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죽음, 상실, 분노, 복수, 슬픔 등 다양한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호메로스는 특히 전장에서 벌어지는 육체적 고통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창이 몸을 꿰뚫고, 피가 튀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장면들은 독자로 하여금 그 고통을 직접 마주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극도의 현실성에 반해, 신들의 태도는 냉담하거나 오락적이기까지 합니다. 트로이 전쟁의 배경이 된 ‘파리스의 심판’은 결국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의 미모 경쟁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이는 인간의 고통이 신의 허영과 질투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며, 전쟁이라는 대재앙이 본질적으로 신의 감정 놀이의 부산물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신들의 감정은 인간처럼 격렬하고 변덕스럽지만, 그 결과는 인간에게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전쟁 중에도 신들은 특정 진영을 편애하거나, 전장을 관전하며 때로는 즐거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아테나는 그리스 군을, 아프로디테는 트로이 군을 돕는 등 명백한 편들기를 하며, 제우스조차 때로는 아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도 “어쩔 수 없다”며 운명을 관조합니다. 이는 신이 인간의 고통을 마치 장기판 말처럼 다루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전쟁의 서사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 도덕적 의미보다는 신의 의지, 감정, 심지어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비정한 세계라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호메로스는 이러한 태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그립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헥토르의 죽음, 프리아모스의 슬픔, 아킬레우스의 회한 등은 신의 무관심과 대비되며, 인간의 고통이 단지 서사의 장치가 아닌 존재적 진실임을 강조합니다. 인간은 고통받는 존재이며, 그 고통은 신의 놀이가 아닌 인간 삶의 실체라는 메시지가 『일리아드』 전반에 걸쳐 흐릅니다.

2. 『오디세이』: 귀향 서사 속 인간 고통과 신의 양면성

『오디세이』에서는 전쟁 후의 고통, 특히 귀향 과정에서의 고난이 주요 서사로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동안 수많은 시련을 겪으며, 이는 단순한 물리적 고난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 영적 고통의 연속입니다. 거대한 폭풍, 괴물, 유혹, 배신, 상실 등은 오디세우스를 끊임없이 시험하며, 그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도 신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반대로 무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포세이돈의 분노입니다.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속이고 탈출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에 분노한 포세이돈은 그에게 온갖 고난을 가합니다. 이 장면은 인간의 교만이 신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그 대가로 오디세우스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고대 윤리관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신의 감정이 인간의 삶을 과도하게 파괴하는 것에 대한 불합리함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끊임없이 도우며, 그의 귀향을 가능케 하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인간의 지혜, 절제, 인내를 높이 평가하며, 오디세우스를 단순한 영웅이 아닌 성찰하는 인간으로 만들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인간의 고통을 완전히 제거해주지는 않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수많은 장애물을 마주하며, 신의 도움은 제한적이고 조건적입니다. 이는 고통이 인간 존재의 본질이며, 신의 역할은 그것을 제거하기보다는 ‘견디게 하는 것’ 임을 시사합니다. 『오디세이』에서는 고통이 단지 신의 장난이 아닌, 인간 성장의 계기로 제시됩니다. 오디세우스는 고통을 통해 교만을 버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공동체의 가치에 눈뜨게 됩니다. 이는 고통이 ‘필연적 과정’으로서 문학화되었음을 의미하며, 신의 개입은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하거나 조율하는 역할에 머물게 됩니다.

3. 신의 유희적 태도에 대한 고대의 윤리적 문제제기

호메로스의 서사 속에서 신은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인간의 고통을 ‘완전히 공감’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이는 단지 문학적 설정이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신 개념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감정과 욕망을 가진 존재로, 인간처럼 싸우고, 사랑하고, 분노하며, 실수도 저지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신의 모습은 인간과 신의 간극을 좁히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신의 책임’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예컨대,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계기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수많은 트로이 병사를 죽일 때, 신들은 이를 관망하거나 조장합니다. 아킬레우스가 강을 피로 물들일 정도로 살육을 벌이자, 강의 신 스카만드로스가 분노해 그를 공격하지만, 이는 자연신의 반발이지 윤리적 제재가 아닙니다. 이처럼 신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지 않으며, 도덕적 기준보다는 권력과 감정의 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호메로스는 이러한 신의 태도에 대해 서사 속에서 직접 비판하지 않지만, 인간의 고통을 극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독자가 그 부조리함을 느끼도록 유도합니다. 이는 일종의 문학적 전략으로, 신화의 형식을 빌려 인간 존재의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즉, 호메로스는 인간의 고통이 신의 유희로 전락하는 구조를 통해, 신의 개념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4. 고통의 의미: 처벌인가, 성장인가?

호메로스 서사에서 인간의 고통은 단순한 처벌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고통은 인간의 성장과 성찰, 공동체 복귀의 필수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관에서 인간이 단지 신의 뜻에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과 태도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존재라는 점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고통을 겪지만,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변화합니다. 아킬레우스 역시 분노와 복수에 휩싸였지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과 프리아모스의 간청을 통해 인간적인 연민과 용서를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외부적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고통이라는 내면적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신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이기보다는 조건적 조력자입니다. 즉, 인간이 일정한 도덕적 태도와 자기 성찰을 보일 때만 신은 도움을 줍니다. 이는 고통이 일방적 부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과정임을 암시합니다. 호메로스는 신의 유희적 태도를 보여주면서도, 그 한계를 드러내고, 결국 고통의 의미를 인간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고통의 서사에서 인간은 어떻게 존엄을 회복하는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 문학의 틀 안에서 인간의 고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면서도, 이를 단지 신의 유희로 환원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변화를 선택하며,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다시 찾게 됩니다. 신은 때로는 무관심하거나, 편애하거나, 심지어 고통을 유발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존엄을 잃지 않고 싸워갑니다. 호메로스는 고통을 존재의 근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고통을 통해 인간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신의 유희는 고통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지만, 그 고통을 견뎌낸 인간은 결국 신을 넘어서는 가치를 획득합니다. 바로 이 점이 고대 문학의 현대적 가치이며, 인간에 대한 문학적, 철학적 신뢰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