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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 드러나는 신의 비윤리성

by 집주인언니 2025. 10. 27.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 드러나는 신의 비윤리성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인간의 운명과 고통, 선택과 희생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강하게 떠오릅니다. “왜 신들은 이토록 비윤리적인가?” 실제로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신들은 전능하면서도 감정적이며, 복수심에 불타고, 편애와 차별을 서슴지 않는 존재들로 그려집니다. 이들은 인간보다 더 강력한 능력을 가졌지만, 인간보다 더 미성숙한 감정과 행동을 보이며, 도덕적 책임에 대해서는 거의 무관심한 태도를 취합니다. 본 글에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신들이 어떤 방식으로 비윤리적인 행동을 보이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분석하고, 왜 이러한 묘사가 고대 문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철학적, 문학적으로 해석해보고자 합니다.

1. 『일리아드』에서 드러나는 신의 감정 중심 행동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장대한 전쟁 서사시입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배후에는 인간의 전략이나 정치적 계산뿐만 아니라, 신들의 감정과 갈등이 핵심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미모가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하며 인간 파리스에게 판결을 요구합니다. 이 상황 자체가 황당하게 보일 수 있지만, 더 비윤리적인 점은 이 여신들이 각기 뇌물을 제안하며 파리스를 회유한다는 점입니다. 아프로디테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 여인인 헬레네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결국 파리스는 그녀를 선택합니다. 이 선택은 곧 헬레네의 납치로 이어지고,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면전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들이 감정에 기반하여 행동하고, 인간 세계에 심각한 파장을 초래하는데도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한 비윤리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프로디테는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스를 반복적으로 보호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심지어 전투 중 파리스가 위기에 처하자 그를 구출하여 다시 전장 밖으로 옮기기까지 합니다. 이는 전쟁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이며, 많은 병사들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는 상황 속에서 그녀의 행동은 편파적이고도 자기중심적인 ‘감정 과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제우스의 행보도 주목할 만합니다. 제우스는 전쟁의 중재자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딸 테티스의 부탁으로 트로이의 일시적 승리를 허락합니다.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초래하고, 아킬레우스의 복귀와 헥토르의 죽음을 불러오며 전쟁의 국면을 극단적으로 바꿉니다. 제우스는 절대적 권한을 가진 신이지만, 결정 과정에서 윤리적 고민이나 인간 세계에 미칠 파장에 대해 성찰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신들 간의 정치와 감정에 따라 판결을 내리고 있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저 바둑판 위의 말처럼 다루어집니다. 이러한 묘사는 신이 인간보다 우위에 있으면서도, 감정에 좌우되어 공정하지 못하며,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존재라는 점에서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러한 신들의 행동을 극대화함으로써 인간이 처한 무력한 현실과,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도덕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대비시키는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2. 『오디세이』에서 드러나는 신의 자기 중심성과 조작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10년에 걸친 귀향 여정을 다룬 서사시로, 다양한 신과 인간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 속 신들은 보다 복합적인 성격을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장면에서 인간보다 덜 윤리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포세이돈의 행동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실명시킨 후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자만합니다. 이에 분노한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복수를 요청하고, 포세이돈은 이 인간 영웅의 귀향을 집요하게 방해합니다. 이때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의 행위가 본인(신)을 모욕했기 때문에 그를 응징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이 행위는 오디세우스의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며, 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은 오디세우스를 무려 10년간 고통 속에 빠뜨리고, 그 가족과 이타카 백성들 모두에게 피해를 줍니다. 이러한 대응은 신의 권능이 감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대표적인 예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의도와 맥락은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이 같은 ‘절대 권력의 감정적 사용’은 비윤리적이고,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권위 남용에 해당하는 행위입니다. 또 다른 예로, 칼립소와 키르케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섬에 억류하고, 사랑을 강요하며, 불멸이라는 유혹으로 그의 자율성을 억압합니다. 키르케는 동료들을 돼지로 변신시키며 위협하고, 오디세우스와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섬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조치합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으며, 감정적 쾌락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합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신이 인간보다 더 윤리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으로, 신들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인간을 도구처럼 다룬다는 점에서 비윤리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들 간의 약속과 계약도 자주 무시되며, 약속이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3. 고대 세계관에서 비윤리적 신이 등장하는 이유

이제 우리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호메로스는 인간보다 윤리성이 떨어지는 신을 그렸을까?” 일반적인 종교나 신화에서는 신은 인간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은 인간보다 강할 뿐, 도덕적으로는 유사하거나 오히려 열등한 존재처럼 그려집니다.

이러한 신관은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세계를 ‘혼돈’과 ‘질서’의 이중구조로 이해했으며, 인간은 그 혼돈 속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신들은 자연과 우주 질서의 상징이지만, 그 자체가 혼돈을 포함한 존재로 그려졌기 때문에, 윤리적 완전성보다는 힘과 감정의 복합체로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호메로스는 인간의 도덕성과 고귀함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신의 비윤리성을 도드라지게 묘사합니다. 신들은 영원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이로 인해 윤리적 행동에 대한 내적 동기도 적습니다. 반면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명예와 도덕적 결단이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즉, 신의 비윤리성은 단지 신들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가능성과 위대함을 부각하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됩니다. 신이 감정에 휘둘릴 때, 인간은 오히려 신의 뜻에 저항하거나, 끝까지 도덕적 선택을 지키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호메로스가 인간을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고귀한 존재로 승화시킨 이유입니다.

결론: 신의 비윤리성, 인간 윤리의 거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속 신들은 분명 인간보다 강력한 존재이지만, 윤리적으로는 더 미성숙하거나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이며, 인간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개입과 조작을 일삼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묘사는 단순히 신의 결함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고통받고 흔들리면서도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인간의 숭고함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적 대비 장치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윤리와 권력, 책임과 감정의 균형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신들은 그러한 고민의 원형을 제공해줍니다. 절대적 권력을 가진 존재가 감정적으로 행동할 때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의미와 질서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이 고전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윤리적 성찰의 장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