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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불균형

by 집주인언니 2025. 10. 26.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불균형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 문학의 대표작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하는 서사시입니다. 특히 두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핵심 구조 중 하나는, 신과 인간 사이의 본질적인 ‘불균형’입니다. 이 불균형은 단순한 힘의 차이를 넘어서서, 지배와 복종, 개입과 무력함, 선택과 강요 등 여러 층위에서 나타납니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은 감정과 의지를 지닌 존재로 인간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면서도,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인간의 삶과 죽음, 심지어 문명의 흥망성쇠를 좌우합니다.

본 글에서는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속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를 분석하고, 그 불균형의 구체적인 양상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제한된 존재였는지, 신이 얼마나 일방적인 결정을 내렸는지,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대응하고 저항했는지를 통해, 고대 서사시가 전하는 존재론적, 윤리적 메시지를 해석해 보는 것이 이 글의 주요 목적입니다.

1. 『일리아드』에서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위계: 선택 없는 개입

『일리아드』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인간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실질적 기원은 신의 결정과 감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아프로디테, 아테나, 헤라가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며 인간 파리스에게 판단을 요구했고,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선택함으로써 헬레네를 얻게 됩니다. 이로 인해 헬레네는 트로이로 데려가졌고, 이는 그리스 연합군의 침공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인간 파리스의 욕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세 여신의 경쟁에서 비롯된 ‘신의 감정’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신의 감정과 판단, 이기심에 의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인간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은 철저히 신의 의도 속에 짜여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신들의 개입은 빈번합니다. 제우스, 아폴론, 아테나, 아프로디테, 포세이돈 등 주요 신들은 각자 지지하는 진영을 위해 전투에 직접 개입하거나 조작합니다. 인간이 피 흘리며 전장에서 싸울 때, 신들은 공중에서 전쟁을 관람하거나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폴론은 트로이군을 돕기 위해 전염병을 퍼뜨리고, 아테나는 그리스 군을 위해 전략을 전수하며 아킬레우스를 조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의 개입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그저 신의 개입에 따른 결과를 감내할 뿐, 그것을 거부하거나 협상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일리아드』는 신과 인간 사이의 극단적인 권력 불균형을 서사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아킬레우스와 그의 어머니 테티스의 관계에서 보듯, 인간조차 신에게 요청하고 간청해야 하며, 그 결과조차 신의 기분과 판단에 좌우됩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는 존재, 즉 신이 설계한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와도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고통, 죽음, 명예, 비극—all 이 모든 것은 신의 결정에 따른 부차적인 결과입니다.

2. 『오디세이』에서의 불균형: 방해와 보호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이야기지만, 그 여정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여정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일리아드』보다 더 뚜렷하게 신과 인간의 불균형 구조를 드러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포세이돈과 아테나의 역할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귀향길에서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실명시키고, 그 사실을 자신이 했다고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업적에 자부심을 느낀 결과였지만, 포세이돈은 이를 ‘신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고 복수를 결심합니다. 이후 오디세우스는 무려 10년 동안 바다를 떠돌게 되며, 수많은 고난을 겪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포세이돈은 자신의 감정을 이유로 인간의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아무런 제한 없이 행사한다는 점입니다. 반면, 오디세우스는 이에 대해 항의하거나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견디고, 기도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도우며 그의 여정을 완성하도록 지원합니다. 그러나 그녀조차도 제우스의 허락 없이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수차례 제우스에게 오디세우스를 도와야 한다고 설득하고, 허락을 받은 뒤에야 본격적인 조력을 시작합니다. 이 또한 신의 세계에서조차 위계가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이며, 인간은 그 위계 바깥에 있는 존재로 나타납니다. 칼립소와 키르케와의 에피소드에서도 불균형은 명확합니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의 섬에서 7년간 억류되어 있었고, 그녀의 사랑을 거절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냅니다.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지만, 그것은 동등한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소유욕에 가까우며, 오디세우스는 이에 대해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헤르메스가 와서 제우스의 명을 전하기 전까지 그는 자유를 되찾을 수 없었습니다. 즉, 신의 의지가 움직이지 않으면 인간은 자신이 누구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오디세이』는 이런 불균형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간의 능력과 한계, 신의 전횡과 자의성, 운명의 부조리함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인간은 사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지만, 결과는 신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3. 호메로스가 그리는 불균형의 의미: 존재론적 성찰

그렇다면 호메로스는 왜 이렇게 신과 인간 사이의 불균형을 강조했을까요? 단순히 고대 그리스의 종교관 때문일까요? 물론 당시 사람들은 신을 실제 존재로 믿었고, 자연현상과 인간 운명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는 세계관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단지 종교적 설명을 넘어서,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고통과 무력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선택하고 싸우고 기다리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전장에 나서고, 프리아모스는 죽음을 무릅쓰고 아들의 시신을 돌려받으러 갑니다. 오디세우스는 신의 분노를 견디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을 떠돕니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적 주체성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통찰하게 만듭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나약하며 외부적 결정에 흔들리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과 선택, 의지로 역경을 견디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호메로스는 신을 통해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면서도, 인간을 통해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결론: 불균형 속 인간의 의미를 묻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의 본질과 가치를 묻는 작품입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명백하게 불균형합니다. 신은 개입하고, 조정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인 반면, 인간은 그 결정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동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서사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인간은 그 불균형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운명에 저항하고, 희망을 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호메로스는 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신과 인간의 불균형은 세계의 구조이자 인간 존재의 조건이며, 그 안에서 인간은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주체로 존재합니다. 고대의 독자들에게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 서사는 변하지 않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힘에도 굴복하지 않고,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