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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vs 신, 누가 더 잔혹했나 (일리아드,비교분석,전쟁윤리)”

by 집주인언니 2025. 10. 19.

인간 vs 신, 누가 더 잔혹했나 (일리아드,비교분석,전쟁윤리)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는 단순한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과 신, 죽음과 영광, 윤리와 복수의 교차점에서 빚어지는 복합적인 서사 구조를 담고 있으며,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류의 정신세계와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특히 독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문제는, 이 이야기에서 "과연 누가 더 잔혹한 존재인가?" 하는 질문이다. 인간인가, 신인가? 호메로스가 그린 세계에서는 인간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지만, 그 배후에는 언제나 신들이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일리아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과 신의 잔혹성을 구체적으로 비교하고, 그들이 행한 폭력의 성격과 윤리적 함의를 분석함으로써, 트로이전쟁의 진정한 잔혹성을 되짚어보고자 한다.

1. 인간의 잔혹함: 명예를 위한 폭력과 집착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인간들은 대부분 자신의 명예, 가족, 조국 또는 복수를 위해 싸운다. 이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피를 흘리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대표적인 인물인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분노와 모욕에 대한 복수심으로 트로이의 수많은 병사들을 무차별하게 살육한다. 그의 가장 잔혹한 장면은 헥토르를 죽인 뒤, 그의 시신을 그리스 진영으로 끌고 가며 모욕을 가하는 부분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시신을 정중히 장례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이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행동은 단순한 전사로서의 폭력을 넘어선, 인간성에 대한 도전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인간들 간의 잔혹함은 집단적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아가멤논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전쟁 포로인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로부터 빼앗는다. 이는 아킬레우스를 전쟁에서 이탈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이 희생되게 만든다. 이처럼 권력과 자존심, 명예를 이유로 인간들은 타인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와 감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장 극악한 방식으로 상대를 죽이고 고통을 준다. 이러한 잔혹성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비롯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인간 본성 안에 내재된 ‘폭력의 기제’를 드러낸다. 『일리아드』는 단순히 인간이 불쌍하다는 관점을 넘어서, 인간이 스스로를 얼마나 파괴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2. 신의 잔혹함: 운명 조작자이자 무책임한 관전자

『일리아드』의 신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은 다치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를 정당화할 필요조차 없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과 신의 폭력은 질적으로 다르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인간 전쟁에 끊임없이 개입하지만, 그 개입의 방식은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아테나는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자극해 무수한 트로이 병사들을 죽게 만든다. 아폴론은 그리스 진영에 역병을 퍼뜨리고, 아프로디테는 파리스를 도와 헬레네를 유혹하게 함으로써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제우스는 중립을 표방하지만, 결국 전쟁의 판도를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행동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무시하고, 운명을 조작하며, 때로는 전쟁을 게임처럼 여기는 모습마저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들은 자신이 초래한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인간이 수천 명 죽어도, 그들은 다시 올림포스로 돌아가 잔치를 벌이고, 인간 세계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삼는다. 이는 도덕적 기준을 넘어선, 일종의 초월적 폭력이다. 인간은 실수하거나 분노해서 폭력을 저지르지만, 신들은 ‘흥미’나 ‘감정’ 또는 ‘경쟁’이라는 모호한 이유로 전쟁의 방향을 바꾸고,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다. 이는 인간의 전쟁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구조화된 잔혹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임이나 윤리 의식에서는 철저히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이들의 잔혹성은 단지 무자비함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한 권력의 상징이다. 그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 이 점이 인간과 신의 잔혹성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다.

3. 폭력의 비교: 감정적 살인 vs 구조적 개입

인간과 신의 잔혹성을 단순히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였는가’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그들이 행사한 폭력의 성격과 맥락, 그리고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인간은 감정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다. 복수, 분노, 명예욕, 공포,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이 인간의 살인을 정당화하거나 촉발시킨다. 반면 신의 폭력은 구조적으로 이루어진다. 신들은 인간의 감정을 조작하고, 운명을 미리 정해놓으며, 전쟁의 판도를 좌우하는 규칙 설계자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여 복수를 결심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트로이 병사를 살해한다. 이는 인간적인 감정의 폭발에서 비롯된 행위다. 하지만 그 이전에 파트로클로스가 전투에 나가게 된 이유에는 신들의 부추김이 있었다. 즉, 신이 만든 구조 안에서 인간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폭력은 일어난다.

신의 잔혹성은 ‘조작된 운명’ 속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인간의 선택을 제한하고,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설계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 이러한 신의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더 치명적이다. 인간이 저지른 학살은 시간 안에 머물지만, 신이 만든 구조는 세대와 시대를 넘어 인간을 지배한다. 이 점에서 보면, 신의 잔혹성은 철학적이며, 보다 심층적인 악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4. 윤리적 관점에서 본 폭력: 누구의 죄가 더 무거운가?

윤리적 측면에서 인간과 신의 폭력을 평가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인간은 감정과 본능에 지배받는 존재이며, 그러한 행위는 동시대의 문화와 도덕 기준에 따라 일정 부분 이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는 고대 그리스의 ‘명예 문화’ 속에서 용납되는 부분이었다. 헥토르 역시 자신의 도시와 가족을 위해 싸운 전사였으며, 그의 죽음은 비극적 영웅담으로 인식된다. 반면, 신의 폭력은 그러한 문화적 맥락이나 감정의 정당화가 불가능하다. 그들은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고, 때로는 재미나 경쟁심, 또는 단순한 기분 전환을 위해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킨다. 이런 점에서 신의 폭력은 인간의 폭력보다 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들은 감정이 아니라 ‘의도된 게임의 규칙’ 안에서 폭력을 행하며, 그 결과에 대한 반성이나 슬픔조차 표현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호메로스는 의도적으로 인간과 신의 윤리적 차이를 드러낸다. 독자는 『일리아드』를 통해, 인간이 잔혹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연민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신에게서는 그러한 ‘연민’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신의 잔혹성이 더 깊고 근원적인 악의 형태라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5. 결론: 더 잔인한 존재는 누구인가?

『일리아드』 속 전쟁은 인간과 신, 둘 모두의 잔혹성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인간은 실질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신은 그 살인을 유도하거나 구조적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감정에 지배받은 인간의 폭력은 직선적이며 감정적이지만, 신의 폭력은 다층적이고 체계적이며 무책임하다. 따라서 “누가 더 잔인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순히 숫자나 장면의 잔혹성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 신은 죽지 않으며, 책임지지 않으며, 인간을 조작하며 즐긴다. 그들은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면서도, 인간의 고통에는 깊이 관여한다. 이러한 존재는 인간보다 더 무서운 잔혹성을 지닌다. 결국 『일리아드』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무자비한 인간과 무책임한 신 중, 진정으로 두려운 존재는 누구인가?”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이 질문은 유효하다. 구조적 폭력과 감정적 폭력, 시스템과 개인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일리아드』 속 인간과 신의 이야기는 고대의 신화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또 다른 반영이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일리아드』 원문이나 현대 해석서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특히, 리치몬드 라티모어(Richmond Lattimore) 번역본이나 캐롤린 알렉산더(Caroline Alexander) 판본은 번역의 정확도와 주석이 풍부하여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