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인간과 신이 교차하며 펼치는 드라마입니다. 특히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은 생존과 명예를 위해 싸우고, 신은 그 전쟁을 조율하거나 방해하며 일종의 ‘놀이판’처럼 다룹니다. 인간의 전쟁은 피와 땀이 섞인 실존의 현장이지만, 신에게 그것은 오락이자 권력의 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인간이 감당하는 전쟁의 치열함과, 신이 즐기고 조종하는 전쟁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며, ‘무엇이 더 치열한가’라는 질문에 접근합니다. 인간의 절박함과 신의 냉소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사적, 윤리적, 철학적 갈등을 통해 고전이 던지는 깊은 물음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인간의 전쟁: 피와 명예, 생존을 건 투쟁
『일리아드』는 트로이 전쟁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바탕으로 인간들이 겪는 공포, 분노, 명예, 그리고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이 서사에서 인간의 전쟁은 단순한 전략 싸움이 아니라, 삶과 죽음이 갈리는 실존적 결단의 연속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선택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전리품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로 전장에서 물러나지만,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뒤 다시 싸움에 복귀합니다. 그가 싸우는 목적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명예의 회복’이며, 이는 그에게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신처럼 불멸하지 않기에, 전쟁은 항상 ‘목숨을 건 선택’입니다.
헥토르의 고뇌와 책임
트로이의 수호자 헥토르는 왕자이자 장군으로서, 아내와 아이를 뒤로하고 전장에 나섭니다. 그는 전쟁이 가족과 도시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합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명예를 위해 싸우며, 이는 철저히 인간적인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기타 전사들의 희생
일리아드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남지 않은 수많은 병사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신에게 선택받지 못한 평범한 인간으로, 창에 찔려 쓰러지고, 시체가 방치되며, 전장에서 의미 없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호메로스는 이들의 죽음을 낭만화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의 참혹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결국 인간의 전쟁은 신의 전쟁과 다릅니다. 인간은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으며, 죽음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끝이자 현실이며, 모든 감정이 격돌하는 ‘치열한 생의 전면’입니다.
2. 신의 전쟁: 권력, 감정, 게임의 장
신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전쟁에 적극 개입합니다. 그러나 그 개입은 인간의 생존이나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감정, 편애, 또는 신들 간의 권력 균형을 위한 행위입니다. 이 속에서 신들은 전쟁을 ‘놀이’처럼 대하며, 인간의 목숨은 일종의 말처럼 다뤄집니다.
아프로디테의 편애
아프로디테는 파리스를 사랑하기에 그를 여러 번 구출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죽음을 맞이하고, 전쟁은 더 격화됩니다. 그녀는 개인적 감정으로 전장의 균형을 흔들며, 이는 윤리적으로 매우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제우스의 균형 놀이
제우스는 중립을 지키려 하나, 종종 트로이의 편을 들기도 합니다. 그는 신들의 요청을 조율하며 전쟁의 흐름을 관리하는 조정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정의’가 아닌, 신들의 관계나 개인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는 전쟁을 치르는 인간에게는 불공평한 결과를 낳습니다.
아테나와 아폴론의 개입
아테나는 그리스를, 아폴론은 트로이를 지지하며 반복적으로 개입합니다. 때론 인간에게 환상을 보여주거나, 전장에서 방향을 바꾸기도 합니다. 그들의 싸움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들 간의 경쟁의 연장입니다. 인간은 그저 도구일 뿐이며, 그 결과는 전장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전쟁을 즐기는 신, 아레스
아레스는 전쟁 그 자체를 신격화한 존재입니다. 그는 명분도, 윤리도 없이 싸움을 즐기며, 양측 모두에게 재앙이 됩니다. 그의 존재는 신이 전쟁을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이 고통받는 동안, 그는 피와 죽음을 오락으로 삼습니다.
이처럼 신의 전쟁은 ‘게임’의 성격을 가집니다. 그들은 죽지 않으며, 패배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신에게 전쟁은 권력의 조정, 감정의 발산, 혹은 권태의 해소 방식일 뿐입니다.
3. 무엇이 더 치열한가? 존재의 무게로 본 비교
인간의 전쟁과 신의 전쟁은 본질부터 다릅니다. 신은 불사의 존재로서 책임과 결과로부터 자유롭지만, 인간은 매 순간 생명을 걸고 싸웁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신의 전쟁이 더 격렬해 보여도, 실질적으로 더 치열한 것은 ‘인간의 전쟁’입니다.
죽음을 아는 자의 싸움
인간은 자신이 죽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것은 실존적 용기이자, 철학적 결단입니다. 반면 신은 죽지 않기에 그 싸움에는 절박함이 없습니다. 이 차이가 바로 ‘치열함’의 본질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윤리적 선택과 책임
헥토르가 가족을 뒤로하고 싸우는 이유, 아킬레우스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이유, 이는 모두 윤리적 선택에 근거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과 책임을 전제로 행동합니다. 반면 신은 윤리적 책임이 없습니다. 그들은 감정대로 움직이고, 인간의 운명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며, 자신의 실수에도 반성하지 않습니다.
신의 냉소 vs 인간의 눈물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는 인간의 눈물이 자주 등장합니다. 반면 신은 거의 울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노하고, 웃고, 장난을 치지만, 눈물을 흘리며 절규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그들에게 전쟁이 진정한 상실이 아닌 ‘시뮬레이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감정은 오직 인간의 몫이며, 그 감정이 서사의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결론: 신의 게임보다 더 치열한 것은 인간의 삶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서 신은 전쟁을 즐기거나 관찰하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감정에 따라 개입하며, 인간의 명예와 죽음을 ‘판’의 일부처럼 다룹니다. 그에 비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걸고 싸우며, 그 과정에서 선택하고, 고통받고, 죽습니다. 신은 전쟁을 움직이지만, 전쟁을 경험하지 않습니다. 신은 영웅을 조율하지만, 영웅이 되지는 못합니다. 진정으로 치열한 싸움은 말없이 죽어가는 병사들의 눈동자 속에, 사랑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떠나는 영웅의 발걸음 속에 있습니다. 인간의 전쟁은 비극이지만, 그 비극은 위대합니다. 결국, 신의 게임은 끝나도 또 다른 판이 열리지만, 인간의 전쟁은 삶의 유일한 무대입니다. 그 치열함은 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며, 그것이 호메로스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통찰 중 하나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