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 (부성관계, 비극성, 성장)

by 집주인언니 2025. 9. 20.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 (부성관계, 비극성, 성장) 관련 사진

고대 그리스 신화와 문학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심 주제 중 하나는 ‘부성’이다. 부성은 단지 생물학적인 관계를 넘어, 사회적, 상징적 역할을 포함한 개념으로 기능하며, 인물의 운명과 성장을 좌우한다. 특히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라는 두 인물은 부성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운명과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 글에서는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의 부성관계, 그 속에 담긴 비극성, 그리고 그들이 걸어간 성장 서사를 비교·분석하여, 고대 문학이 현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고찰해본다.

1. 부성관계의 복잡성: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의 길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비극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라이오스를 자신도 모르게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이 모든 것은 태어나기도 전에 신탁으로 예언된 운명이다. 오이디푸스는 부모를 피하기 위해 도망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도망이 오히려 신탁을 실현시킨다. 그에게 있어 부성은 피하고 싶은 대상이자,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실체였다. 오이디푸스는 부성을 제대로 경험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한 채 그 실체를 파괴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붕괴시켰다. 이러한 설정은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부성의 절대성과 그 상실이 초래할 수 있는 재앙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반면, 텔레마코스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부성을 경험한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과 그 후의 모험으로 인해 집을 떠난 동안 태어나고 자란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그의 존재는 이야기 속 인물처럼 추상적이다. 어머니 페넬로페와 함께 이타카에서 성장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빈자리를 통해 ‘존재하지 않는 부성’을 내면화한다. 그러나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 권력을 차지하려는 구혼자들의 위협 속에서, 점차 책임감과 판단력을 키우며 진정한 리더로 성장해간다. 이는 부성이 단지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정체성과 책임을 이끄는 상징적 구심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이디푸스의 부성은 ‘비극적 실현’의 대상이고, 텔레마코스의 부성은 ‘상징적 이상’이다. 이 둘은 부성이라는 공통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반대의 의미 체계를 만들어낸다. 오이디푸스가 부성의 실현을 통해 몰락하는 반면, 텔레마코스는 부성의 회복을 향한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부성의 결핍이 두 인물에게 각기 다른 운명과 인간상을 부여한 것이다.

2. 비극성과 성장성의 대비: 정해진 운명 vs 선택 가능한 미래

오이디푸스는 숙명론적 세계관의 상징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주어진 예언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가 아무리 지혜롭고 정의로운 통치자라고 해도, 결국 자신이 부모를 죽이고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오이디푸스는 자해와 망명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는 비극의 구조를 가장 전형적으로 따르고 있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고대의 인식을 강하게 투영한다. 이러한 서사는 독자에게 두려움과 경외감을 안기며,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강화시킨다. 반면 텔레마코스의 여정은 전형적인 성장 서사다. 그는 이야기 초반부에서 미성숙하고 수동적인 인물로 그려지지만, 신 아테나의 개입과 멘토들의 조언, 그리고 타지에서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그는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가며, 마침내 오디세우스가 돌아왔을 때 함께 집안을 정리하고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텔레마코스의 여정은 인간의 능동성과 선택 가능성을 강조하며, 자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는 고대 세계관 안에서도 인간의 자율성과 성장의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었음을 말해준다. 오이디푸스가 비극성을 통해 인간 조건의 한계를 드러낸다면, 텔레마코스는 성장성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말한다. 운명이라는 필연의 힘과 개인의 선택이라는 우연의 힘이 어떻게 문학 속에서 서로 다른 서사 구조를 만들어내는지, 이 두 인물은 훌륭한 대비 사례가 된다.

3. 서사 구조와 문학적 기능: 몰락의 서사 vs 성장의 서사

『오이디푸스 왕』은 전형적인 3막 구조를 따르며, 문제의 제기 → 문제의 인식 → 문제의 해결(비극적 결말)이라는 비극의 공식에 충실하다. 오이디푸스는 이야기 초반에서 테베를 구한 영웅으로 등장하지만, 후반부에는 자신이 그토록 찾던 진실이 자신의 몰락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실을 향한 지적 탐구가 오히려 자기 파괴로 이어진다는 아이러니는 인간 지성의 한계를 드러내며, 문학적 충격을 강화한다. 독자는 오이디푸스의 몰락을 통해 '지식의 오만'과 '운명의 무력함'을 체감하게 된다. 반면, 『오디세이아』에서 텔레마코스의 역할은 부성 회복의 준비자이자 조력자다. 그의 여정은 서사의 초반을 담당하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진행시키는 동기를 제공한다. 또한 그는 성장의 여정을 통해 아버지와 대등한 관계로 나아가며, 아버지의 귀환 이후에는 실질적인 행동을 함께 수행한다. 이러한 서사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의 일부이면서도, 가족과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보다 포괄적 가치를 담고 있다. 문학적 기능으로 보자면, 오이디푸스는 ‘교훈적 비극’의 주인공이며, 텔레마코스는 ‘희망적 성장’의 상징이다. 오이디푸스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허함을 배운다면, 텔레마코스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변화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이 둘은 고대 문학 속 인간상에 대한 양극단의 모델을 제시하며, 고대 서사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4. 현대적 해석: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를 통해 본 오늘의 청년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이 심리학에서 사용될 만큼, 오이디푸스의 서사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부모와의 관계, 정체성의 혼란, 자아의 붕괴 등은 오늘날 청년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면, 텔레마코스의 서사는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 없는 청년기’라는 현실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부성의 부재, 혼란 속의 자아 탐색, 타인의 조언과 사회적 경험을 통한 성장이라는 요소는 현대 청년들의 현실적인 성장 스토리와 닮아 있다.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점점 상징적인 수준으로 축소되고 있으며, 많은 청년들은 실질적인 부성보다 매체나 사회적 모델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한다. 이러한 점에서 텔레마코스는 현대 청년의 전형적인 모델로 읽힌다. 반면 오이디푸스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 혹은 사회적 규범과의 충돌로 인해 파멸하는 인물로, 오늘날의 정신적 고립과 혼란을 상징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 인물을 현대적 시선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단순한 고전 읽기를 넘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서의 기능을 한다. 오이디푸스와 텔레마코스는 고대 문학에서 가장 상징적이고도 극단적인 부성 경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하나는 부성의 실현을 통해 몰락하고, 하나는 부성의 부재 속에서 성장한다. 이 두 인물은 비극과 성장, 숙명과 선택, 몰락과 희망이라는 서사 구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순한 고전 해석을 넘어,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 가족의 의미, 성장의 방식 등을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다. 부성의 자리, 혹은 그 빈자리를 마주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거울이며, 그 거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바로 ‘자아’의 문제이자, 인간의 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