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전쟁은 헬레네의 납치 때문일까, 아니면 고대 무역로를 둘러싼 경제 전쟁이었을까? 『일리아드』로 널리 알려진 이 고대 전쟁은 오랫동안 로맨스와 영웅신화로만 기억되어 왔지만, 현대 역사학과 고고학은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적·경제적 전략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신화와 전략 사이에서 진짜 전쟁의 원인을 탐색해 본다.
헬레네와 파리스: 전쟁을 부른 사랑인가, 명분인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함께 도망친 사건이었다. 헬레네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묘사되며, 그녀의 유혹 혹은 납치는 곧 그리스 전체의 명예와 질서를 무너뜨린 행위로 간주되었다. 메넬라오스는 이 모욕에 분노했고, 그의 형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향해 출정했다. 전쟁은 무려 10년간 이어졌고, 수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이야기는 문학적, 미학적 관점에서는 매우 매혹적이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쟁의 '진짜' 이유일까?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이 ‘헬레네 납치’가 실제 사건이 아니라,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였다고 본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왕실과 귀족 간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는 도구였으며, 그들의 이동이나 이혼조차도 국제적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한 여성의 문제로 수십 개의 도시국가가 수년간 전쟁을 벌였다는 점은 현실적으로 매우 의심스럽다. 오히려 헬레네의 서사는 전쟁의 진짜 목적을 감추기 위한 ‘이야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고대 문명에서는 전쟁의 명분이 매우 중요했다. 정당하지 않은 전쟁은 민심을 얻기 어렵고, 병사들의 충성도도 낮아질 수 있었다. 따라서 '헬레네 납치'와 같은 로맨틱하고 도덕적 분노를 유발하는 서사는 군대를 동원하고, 민중을 결집시키기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된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전쟁의 실질적 이유가 경제적 이득이나 자원 확보임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갈등이나 인권, 정의 등의 명분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의 트로이 전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트로이의 지리적 가치: 해협을 지배하는 도시
트로이 전쟁의 ‘실질적 이유’로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것은 트로이가 갖고 있던 전략적 무역권이다. 트로이는 아나톨리아(현 터키)의 북서쪽, 다르다넬스 해협(헬레스폰트)의 입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은 에게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며, 흑해로 향하는 길목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트로이는 지중해 무역로의 핵심 요충지였던 것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토지 기반이 빈약하여, 외부 무역에 의존해야 생존할 수 있었다. 곡물, 금속, 석유, 향신료, 노예 등 주요 자원을 흑해 연안, 아시아 소국, 이집트 등지에서 수입했고, 이를 위한 해상 통로는 곧 경제 생존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로이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제하고 통행세를 부과하거나 특정 세력과만 무역을 허용하는 것은 곧 그리스 경제 전체에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실제로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19세기 후반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하면서, 도시가 여러 차례 재건되었고, 그 과정에서 외부 침입과 대규모 전쟁의 흔적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특히 ‘트로이 VI’와 ‘트로이 VIIa’는 전쟁 또는 자연재해에 의해 파괴된 뒤 재건된 시기로, 이 시점이 호메로스의 이야기와 대략 일치한다고 본다. 이 유적에서는 미케네 문명과 유사한 토기, 무역상품, 귀금속 등이 다수 출토되어, 트로이가 고도로 발달된 도시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트로이는 단지 해상 무역의 거점일 뿐 아니라, 육상 교역로의 관문이기도 했다. 아나톨리아 내륙과 유럽을 잇는 교역망에서 이곳은 동서양의 연결 고리였다. 만약 그리스 연합군이 이 지역을 확보하게 된다면, 단지 트로이 하나의 도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무역권 전체를 차지하는 전략적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전쟁의 본질: 신화적 명분과 현실적 계산의 이중 구조
트로이 전쟁을 단지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영웅적 투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적 수사에 너무 깊이 빠진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신화와 문학에서 전쟁을 낭만적으로 소비하지만, 실제 역사는 언제나 정치적 이해관계, 경제적 자원, 지정학적 전략과 얽혀 있다. 트로이 전쟁은 당시 그리스 도시국가의 경제 체제를 반영하는 전쟁이기도 하다. 미케네, 티린스, 피로스 등 주요 도시국가들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지만, 대외 전쟁에선 연합하여 공동 이익을 추구했다. 그들에게 트로이 정복은 단지 한 도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흑해와 아시아를 향한 무역 루트를 개방하고, 지중해 해상권을 재편하는 계기였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트로이는 신화적으로도 위험한 도시였다. 파리스의 심판, 아킬레우스의 운명,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 등 수많은 신화가 트로이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실제 역사 속에서 트로이가 단지 물리적 도시가 아닌, 정신적 적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트로이와의 전쟁은 물리적 충돌인 동시에 문명 대 문명의 충돌, 질서 대 혼돈, 그리스 중심주의 대 아시아적 가치관의 상징적 대결이었을 수도 있다. 현대 정치에서조차도 이러한 구조는 반복된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 일어나는 전쟁들 역시 종교, 민족, 이념의 표면적 갈등 이면에 석유, 수로, 전략 요충지, 정치 세력의 헤게모니와 같은 현실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다. 마찬가지로, 트로이 전쟁도 신화와 전략이 이중 구조로 얽혀 있었으며, 우리는 그 이면의 동기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트로이 전쟁은 신화와 전략, 감정과 이익이 맞물려 있는 복합적 사건이다. 헬레네는 전쟁을 낭만적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당시 그리스 사회가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서사적 도구였다. 반면 트로이의 무역적 가치와 지정학적 위치는 전쟁을 결심하게 만든 실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이면을 읽는 능력이다. 신화는 이야기이지만, 전략은 역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