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슐리만의 유물 무단 반출 사건 전말 (트로이, 보물, 반환과정)

by 집주인언니 2025. 10. 7.

슐리만의 유물 무단 반출 사건 전말 (트로이, 보물, 반환과정) 관련 사진

19세기 고고학계를 뒤흔든 한 남자의 이름,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그는 트로이 전설에 매료되어 이를 실제 역사로 증명하고자 평생을 바쳤고, 결국 고대 트로이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 인물로 기록됩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찬사와 함께 비판도 함께 따라다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발굴한 유물들을 본국의 허가 없이 무단 반출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슐리만의 유물 무단 반출 사건의 전말과 그로 인한 국제적인 문화재 반환 논쟁, 그리고 그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트로이 보물의 반환 과정과 정치적·법적 갈등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트로이 발굴과 ‘프리아모스의 보물’ 발견

슐리만은 독학으로 언어를 습득하고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후, 평생의 꿈이었던 트로이 유적 발굴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터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고, 외국인의 발굴 활동은 허가가 필요했으며, 모든 유물은 오스만 제국 소유로 간주되는 법적 조항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슐리만은 이러한 조항을 무시하거나 간과했고, 결국 1873년, 트로이 유적지 히사르릭(Hisarlik)에서 자신이 ‘프리아모스의 보물(Treasure of Priam)’이라 명명한 대량의 황금, 은, 청동 유물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유물은 트로이 전쟁의 전설 속 인물인 프리아모스 왕의 소유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트로이 2층의 유물로 현재 학계에서는 트로이 전쟁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6~7층보다 훨씬 이전 시기의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리만은 이 보물을 트로이의 결정적 증거로 내세웠고, 이를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슐리만은 이 보물을 발굴한 후, 오스만 정부의 허가 없이 몰래 유물들을 나폴리와 파리를 거쳐 독일로 밀반출한 것입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이에 분노하여 슐리만을 고발하고, 발굴권을 박탈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후 슐리만은 다시 발굴권을 얻기 위해 오스만 정부와 협상을 벌이며 일부 유물을 반환하고 벌금을 납부했지만, 대부분의 주요 유물은 이미 독일로 넘어간 후였습니다.

유물의 독일 전시와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소실 및 탈취

슐리만이 독일로 반출한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베를린의 에트루리아 박물관과 국립박물관에서 전시되며, 독일 국민의 자긍심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유물들은 금으로 된 머리장식, 귀걸이, 목걸이, 팔찌, 음식을 담는 그릇, 청동 무기류 등 총 8,000여 점에 달하는 고대 유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독일은 자신들의 고고학적 업적과 문명 이해도를 과시했고, 슐리만은 독일 내에서 ‘트로이를 세상에 알린 영웅’으로 추앙받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 유물의 운명은 다시 한번 급변하게 됩니다. 1945년, 소련군이 베를린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프리아모스의 보물’을 포함한 수많은 박물관 유물들이 소실되거나 행방불명됩니다. 당시 독일은 전시 상황에서 이 유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하 벙커와 금고에 보관했지만, 연합군의 공습과 혼란 속에 대부분의 위치 정보가 유실되었습니다. 이후 50여 년 동안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행방불명 상태로 간주되었으며, 학계에서는 소실되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1993년, 러시아 모스크바의 푸시킨 미술관에서 이 유물의 존재가 극적으로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소련군이 전리품(Reparation)의 일환으로 독일에서 몰래 반출해 갔던 것입니다. 러시아는 이를 ‘전쟁 피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 주장했고, 독일과 터키는 즉각 반환을 요구하며 새로운 문화재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국제 문화재 반환 분쟁: 터키, 독일, 러시아의 갈등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하나의 유물이지만, 이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이해관계는 세 나라 사이의 치열한 문화 외교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먼저 터키는 이 유물이 자국 영토에서 발굴되었고, 당시 오스만 제국 법률에 따라 모든 문화재는 국가 소유이므로 본래부터 반환 대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슐리만의 무단 반출은 명백한 문화재 도둑질이며, 현대 국제법 기준으로도 불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한편 독일은 슐리만이 유물을 독일에 기증했으며, 이를 통해 유물 보관과 연구에 기여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반 오스만 정부와의 일부 합의, 그리고 벌금 납부 및 일부 유물 반환 등을 들어 일정 부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입장은 더욱 강경합니다.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전쟁 피해에 대한 보상 개념으로 독일 내 유물들을 반출했으며, 이는 당시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러시아는 독일의 전쟁 범죄로 자국 박물관 수천 점의 문화재가 파괴되고 약탈당한 점을 들며,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그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라는 입장입니다. 현재도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유물의 반환을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세 나라의 주장은 모두 나름의 역사적, 법적, 정치적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며, 국제적인 문화재 소유권 규정의 모호성과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유네스코나 국제사법재판소(ICJ) 등의 개입이 이뤄질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적 합의 없이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입니다.

현재의 전시 현황과 대중적 인식 변화

현재 ‘프리아모스의 보물’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푸시킨 미술관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분산되어 보관 및 전시되고 있습니다. 해당 유물들은 일반 관람이 가능하며, 전시 설명에는 ‘독일에서 온 전쟁 보상품’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어 러시아 측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독일 베를린 국립박물관은 여전히 이 유물들의 반환을 러시아에 요청하고 있으며, 일부 재현품과 모형을 전시 중입니다. 특히 독일 내 학자들과 박물관 관계자들은 유물의 원래 위치로의 귀환은 역사적 정의의 회복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속적인 반환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터키 역시 최근 들어 문화재 환수에 매우 적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트로이 박물관(Troy Museum)을 신설하여 국제 사회에 트로이 유물의 원상회복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는 일부 트로이 관련 유물이 미국에서 터키로 반환되면서 큰 이슈가 되었고, 터키 정부는 이를 계기로 ‘프리아모스의 보물’ 반환운동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대중적 인식도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물이 어디에 있든 보존되고 연구된다면 괜찮다는 입장이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문화재가 본래의 맥락과 장소에서 보존되어야 한다는 ‘문화 정체성’ 관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특히 제국주의 시절에 수탈된 유물들에 대한 비판과 맞물려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결론: 문화재 반환 문제의 상징, 슐리만 사건

슐리만의 유물 무단 반출 사건은 단순한 고고학적 사건이 아닌, 국제법과 문화 외교, 제국주의의 유산, 그리고 문화재의 윤리적 소유권 문제를 모두 포함한 복합적 사안입니다. 트로이 유물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역사적 책임과 문화적 자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트로이 전쟁이 사실이었는지 아닌지를 떠나, 트로이라는 장소에서 발굴된 보물들은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이며, 그 보관과 전시는 해당 문명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논의는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슐리만은 위대한 발견자이자, 동시에 윤리적 한계에 직면한 인물로 평가받아야 하며, 그의 행보는 고고학계와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를 남겼습니다.

앞으로의 해결책은 국가 간의 정치적 협상뿐 아니라, 학술적 공동 연구, 전시 공유 협정, 디지털 아카이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재의 ‘소유’가 아닌, 인류 전체를 위한 ‘공유’와 ‘존중’이라는 인식 전환입니다. 그 출발점에, 우리는 ‘슐리만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