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역사에서 한 인물의 집념이 얼마나 강력한 현실화를 이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입니다. 그는 고전 서사시 일리아드를 맹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해 낸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입니다. '일리아드는 나의 성경이었다'는 그의 말처럼, 단순한 문학작품이 그의 인생 전체를 지배하고 움직이게 했습니다. 본 글에서는 하인리히 슐리만의 꿈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고학이 어떤 전환점을 맞이했는지 자세히 분석하겠습니다.
일리아드를 인생 지도로 삼다: 소년 슐리만의 꿈
슐리만은 독일 북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와 고전에 강한 흥미를 가졌고, 특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에 심취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들 서사시를 신화나 문학적 창작물로 간주했지만, 슐리만은 달랐습니다. 그는 그것을 '사실의 기록'으로 믿었고, 트로이가 실제 존재했던 도시라 확신했습니다. 그의 열정은 상상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학교 교육은 중단되었지만, 독학으로 수십 개국 언어를 익히며 상업에 종사했고, 결국 사업에 성공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재산의 상당 부분을 트로이 발굴에 투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역사 탐구가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실현하는 행위였습니다. 슐리만은 일리아드의 지리적 단서를 바탕으로 트로이의 위치를 추적했고, 터키의 히사를릭(Hisarlik)이라는 작은 언덕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곳이 트로이의 실존 유적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1871년부터 이 지역의 발굴에 착수하게 됩니다.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유일한 '지도'는 일리아드였습니다.
트로이 유적의 발견과 발굴 과정의 전환점
슐리만의 트로이 발굴은 당시 고고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트로이의 실존 여부가, 실제 유적의 발견을 통해 점차 신빙성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초창기 발굴에서 ‘프리아모스의 보물(Priam’s Treasure)’이라고 부른 화려한 금속 유물을 발굴하였고, 이를 통해 그의 주장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발굴 방식은 오늘날 기준으로는 매우 조잡하고 위험한 수준이었습니다. 현대 고고학자들은 슐리만이 지나치게 빠른 발굴 속도와 중장비 사용으로 상층부의 고대 유적층을 파괴했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트로이 VI와 VII 층에 해당하는 주요 층위를 건드리며, 더 깊숙한 시대의 유물로만 몰두했던 점은 그가 ‘문헌에만 집착’ 한 결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리만의 발굴은 고고학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기록됩니다. 그는 최초로 고전 문학을 바탕으로 실제 유적을 찾아낸 인물이었으며, 이로 인해 ‘문헌고고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향이 대두되었습니다. 고대 문헌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후대 고고학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발굴 현장에서 철저한 기록과 사진 촬영, 보고서 작성을 시도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접근이었습니다. 후속 연구자들이 그의 기록을 바탕으로 트로이 유적의 층위를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남긴 방대한 자료 덕분이었습니다. 비록 일부 유물이 밀반출되는 등의 논란은 있었지만, 그의 작업은 고고학을 ‘현장 중심의 과학’으로 이끈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슐리만과 고고학의 변화: 신념이 만든 학문적 전환
슐리만의 업적은 단순히 유적을 발견한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고고학의 연구 방식, 학문적 태도, 발굴의 목적 등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고고학의 대중화에도 기여했습니다. 이전까지 고고학은 귀족 취미나 박물관 수집품 확보 수단에 가까웠지만, 슐리만 이후로는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과학적 학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문헌을 통한 유적 해석’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훗날 성경 고고학(Biblical Archaeology)이나 마야 문명 연구, 인더스 문명 재조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문헌과 유적의 일치 여부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는 연구법은 고고학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그 출발점이 슐리만의 일리아드 해석이었습니다. 고고학적 윤리와 방식에 있어서도 그는 후대에 많은 반면교사가 되었습니다. 슐리만은 발굴의 속도에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파괴된 문화층은 이후 복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대 고고학은 이 점을 교훈 삼아, 훨씬 더 섬세하고 체계적인 층위 분석, 데이터 기록, 보존 철학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의 발굴법이 비판받는 동시에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는 ‘순수한 열정’과 ‘자기 재산을 투자한 고고학자’로서의 상징성입니다. 그가 학계에서 무시받을 수 있었던 민간인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념 하나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고고학자들은 때로 자료보다 ‘직감’과 ‘열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며, 그 대표 사례로 슐리만을 꼽습니다. 마지막으로, 슐리만의 인생은 고고학 외에도 문학, 언어학,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독학으로 15개 국어 이상을 습득했고, 이를 현장 연구와 보고서 작성에 활용했습니다. 또한 그의 발굴 기는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고고학을 일반 대중에게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발굴자’가 아니라, 역사와 신화를 현실로 끌어낸 ‘로망의 구현자’였습니다. 슐리만의 생애와 업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의 실수는 교훈이 되었고, 그의 꿈은 수많은 학자와 대중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문학작품 속 신화를 현실의 유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순수한 열정이었습니다. '일리아드는 나의 성경이었다'는 그의 고백은 곧 학문과 인생이 하나로 융합된 삶의 표본이며,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깊은 통찰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