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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vs 복수: 아킬레우스의 감정은 무엇이었나

by 집주인언니 2025. 9. 10.

분노 vs 복수 아킬레우스의 감정은 무엇이었나 관련 사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단지 고대 전쟁을 묘사한 서사시가 아닙니다. 인간의 감정, 특히 아킬레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분노와 복수의 감정은 단순한 감정의 발로가 아니라 인간 존재와 공동체 질서, 윤리적 갈등,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아킬레우스의 감정이 분노에서 복수로 어떻게 전환되며, 그것이 개인과 공동체, 신과 인간 사이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총체적으로 분석합니다.

운명

아킬레우스의 감정 서사에서 운명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두 가지 운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았습니다. 하나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 짧은 생을 살지만 불멸의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오랜 생을 누리되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결국 전자를 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영웅적 선택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인간이 운명에 어떻게 반응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며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입니다. 운명은 고정된 미래가 아니라, 일정한 흐름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그 무게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운명을 인식하고, 그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껴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는 대신 명예라는 상징적 가치, 클레오스(Kleos)를 쫓습니다. 클레오스는 죽은 후에도 남는 영광이자, 공동체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존재로 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그의 운명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의 영속성을 선택하는 것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운명은 단지 신이 정한 절대적인 힘인가? 『일리아드』는 이에 대해 보다 복잡한 대답을 제공합니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조차 인간의 운명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합니다. 제우스는 아킬레우스가 전장에 복귀하면 헥토르가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막지 않습니다. 이는 신들이 운명을 예견할 수는 있지만, 항상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이 지점에서 인간의 선택이 운명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만듭니다. 운명은 또한 아킬레우스가 왜 그토록 분노하고 복수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짧을 것임을 알기에,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가치, 즉 명예와 인정을 반드시 획득해야만 했습니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빼앗은 사건은 단순한 모욕이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그에게 운명은 선택이자 필연이며, 그것이 부정당했을 때 그는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그가 전장에서 물러난 것은 단지 분노 때문이 아니라, 운명 속에서 자신이 지켜야 할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킬레우스의 운명은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죽느냐에 관한 것이며, 그의 감정은 운명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 속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인식 속에서 실현되는 동적인 개념이며, 아킬레우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자유의지

운명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아킬레우스는 자유의지를 어떻게 행사했는가? 이는 『일리아드』를 읽는 데 있어 중요한 질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운명과 자유의지가 상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신들조차도 전적으로 지배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며, 그의 선택은 그의 감정과 이성의 결과물입니다. 그의 전장에서의 철수는 단순한 감정적 퇴장이 아닙니다. 이는 매우 이성적이고 계산된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아가멤논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공동체 내에서의 힘의 균형을 바꾸려 했고, 이는 자유의지의 가장 직접적인 표현입니다. 그는 운명을 따르되, 그것을 수용하는 방식에서 자신만의 논리와 감정, 의지를 발휘합니다. 그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접했을 때, 그는 다시 전장에 나갈 것을 결심합니다. 이는 복수심에 사로잡힌 감정적 선택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이면에는 공동체 질서 회복이라는 목적이 존재합니다. 복수는 감정이자 행위이며, 동시에 질서를 바로잡는 고대 사회의 방식이었습니다. 아킬레우스는 단지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된 공동체의 도덕적 균형을 되찾기 위해 복수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자유의지의 윤리적 사용을 보여줍니다. 자유의지는 단순히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동반하며,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그에 따른 도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감정적으로는 폭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질서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자유의지가 단지 반항의 수단이 아니라, 질서를 만드는 주체적 선택임을 시사합니다. 또한 아킬레우스는 복수를 완수한 후에도 감정의 흐름을 통제합니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훼손한 뒤, 프리아모스의 애원 앞에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시신을 돌려줍니다. 이는 단순한 영웅적 복수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과 이성이 결합된 선택입니다. 아킬레우스는 감정을 느끼되, 그것을 조절하고, 공동체의 윤리를 되찾기 위해 행동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자유의지는 무책임한 자율이 아니라, 인간성의 회복을 위한 실천으로 기능합니다.

자유의지는 감정과 이성, 공동체와 개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리아드』는 인간이 신의 뜻이나 운명에 휘둘리는 존재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 협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아킬레우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그의 모든 선택은 분노와 복수 속에서도 인간적인 책임감과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트로이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가 벌어진 무대는 트로이입니다. 이 도시는 단순한 전쟁의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 문명의 충돌, 가치의 대립이 집중된 공간입니다. 『일리아드』 전체가 트로이 전쟁의 마지막 몇 주 동안의 사건만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는 고대 서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배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트로이는 외부로부터의 침략을 받는 입장에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공동체적 가치와 가족 중심의 윤리가 강조됩니다. 헥토르는 이러한 트로이의 가치관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전사이지만 동시에 아버지이며, 남편이며, 아들입니다. 그는 아킬레우스와 달리 전쟁을 개인적 명예보다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수행합니다. 이와 달리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감정과 명예를 최우선으로 하며, 공동체보다 자기 정체성에 더 무게를 둡니다. 이 대비는 트로이라는 공간이 ‘감정의 충돌지대’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트로이에서 벌어진 전투는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문명과 문명 사이의 대립이며, 감정과 질서, 개인과 공동체, 자유의지와 운명 사이의 투쟁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트로이라는 공간을 통해 그 파괴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주며, 복수는 그 질서를 파괴하거나 되돌리는 힘으로 기능합니다. 또한 트로이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싸움은 인간들 간의 대결이지만, 그 뒤에는 아테나, 아폴론, 제우스 등의 신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때로 인간의 감정을 조율하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냅니다. 트로이는 신과 인간이 뒤엉킨 공간으로, 인간의 선택과 신의 개입이 얽히는 구조를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이 도시의 파괴는 단지 물리적인 붕괴가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의 붕괴이기도 합니다. 전쟁, 감정, 명예, 사랑, 복수, 죽음—이 모든 것이 트로이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녹아들고, 아킬레우스의 감정은 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폭발합니다. 트로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감정 공간이며, 아킬레우스라는 인물이 겪는 감정의 지형도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아킬레우스의 감정은 단지 전쟁의 불씨가 아니라, 인간성과 공동체, 윤리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서사적 장치입니다. 그의 분노는 개인의 상처이자 사회적 항의이며, 복수는 질서 회복의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결국 인간을 완성하는 중요한 힘으로 작동합니다. 『일리아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감정은 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반성, 실천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는 도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