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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귀향 서사와 현대 재난 영화의 귀환 구조 (노스토스, 회복, 내러티브)

by 집주인언니 2025. 9. 9.

고대 귀향 서사와 현대 재난 영화의 귀환 구조 (노스토스, 회복, 내러티브) 관련 사진

노스토스(Nostos)는 단순한 귀향을 넘어 인간 존재의 회복, 자기 정체성의 재확립, 공동체와의 재통합이라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대 문학 속 노스토스의 핵심인 ‘운명’, ‘자유의지’, ‘트로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음을 분석하고, 현대 재난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 속에 그 사상이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운명과 귀향의 필연성: 오디세우스는 왜 돌아와야 했는가?

고대 그리스 문학에서 '운명'은 절대적이면서도 인간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근원적인 힘으로 그려집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은 단순한 가정 복귀가 아니라, 운명적 질서의 복원이며, 신과 인간 사이의 균형 회복을 상징합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단순히 삶의 마무리가 아니라, 신이 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시련을 겪지만, 결국 운명에 이끌려 귀향합니다. 칼립소의 섬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그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이타카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신들이 개입하고, 바다의 분노가 그를 밀어내도, 그는 ‘돌아가야 하는 자’로 존재합니다. 이는 운명이 인간을 지배하면서도, 인간이 그 운명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서사화한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 개념은 오늘날에도 이야기 구조에서 반복됩니다. 현대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험을 뚫고 가족이나 공동체에 돌아오는 서사는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상실된 질서와 균형을 회복하려는 운명적 귀환의 반복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는 인류의 운명을 짊어진 존재로, 우주를 떠돌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가족과의 재회를 넘어, 자신이 속했던 시간과 공간의 균형으로 회귀합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도 파이는 바다를 떠도는 동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신화와 환상으로 치환해 해석하지만, 결국은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오는 숙명을 수용합니다. 이는 개인의 삶과 감정이 어떤 혼란을 겪더라도 결국 인간은 본질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 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고대 서사 속 귀향이 운명이라면, 현대 서사에서도 여전히 귀향은 인간의 필연적인 과제로 존재합니다. 고대인들에게 있어 노스토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임무였습니다. 집에 돌아온다는 것은 단지 건물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리'로 되돌아오는 일입니다. 운명은 그것을 지시하고, 서사는 그것을 증명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왜 반드시 돌아와야 했는가? 그건 그의 삶이 거기에서 시작되었고, 그곳에서 의미를 완성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노스토스가 ‘여정’이 아닌 ‘운명’인 이유입니다.

자유의지와 귀향의 선택: 돌아갈 수도, 머무를 수도 있었던 순간들

운명이 귀향의 필연이라면, 자유의지는 귀향의 선택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여정을 통해 끊임없이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칼립소는 영원한 생명을 조건으로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로 돌아가지 말 것을 제안합니다. 키르케는 현세를 초월한 쾌락과 안정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합니다. 이는 운명에 종속되면서도,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자유의지의 형상화입니다. 이러한 서사는 현대 재난 영화에서도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래비티』의 라이언 박사는 외계 공간에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구로의 복귀를 선택합니다. 고통스러운 트라우마와 현실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살아남아 돌아오는 것’을 선택합니다. 이는 본능이나 운명이 아닌, 자기 결정에 의한 귀향입니다. 이 순간의 선택은 단순한 생존 그 이상이며, 자기 극복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월드워Z』의 주인공 제리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신이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에 뛰어듭니다. 그는 귀환의 보장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고, 결국 모든 위기를 극복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고난을 받아들이고, 귀향이라는 목적지를 위해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모습에서 자유의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자유의지는 귀향 그 자체를 넘어서, ‘어디에 속할 것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귀향은 단지 이동이 아닌, 나의 자리와 존재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신들과 맞서 싸우는 대신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 과정은 자유의지가 어떻게 운명과 균형을 이루며, 귀향의 여정을 완성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노스토스는 운명과 자유의지의 이중 구조 속에서 완성됩니다. 아무리 돌아가야 하는 필연이 존재하더라도, 그 길을 걷는 건 스스로의 결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노스토스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간이 되는 과정’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귀향의 서사적 전환점

노스토스의 시작은 바로 트로이 전쟁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함락의 전략가로 활약한 인물이지만, 그 전쟁의 대가로 가장 긴 귀향 여정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트로이는 단순한 전장이 아닌, 귀향 서사의 출발점이며, 인간 욕망, 신들의 게임, 운명의 질서가 복합적으로 얽힌 상징적 공간입니다. 트로이 전쟁 이후, 그리스의 여러 영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귀향하거나 귀향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인간의 본성, 죄책감, 희생, 그리고 복원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트로이는 파괴를 상징하는 동시에, 복구를 향한 여정의 단초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 승리는 곧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서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고대 서사에서 ‘영웅’이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책임과 회복을 감당하는 존재로 재정의되기 때문입니다. 트로이는 오디세우스가 '영웅'에서 '인간'으로 변화하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현대 재난 영화에서도 이러한 트로이적 순간이 존재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인류가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는 순간, 그것은 트로이의 파괴와 같은 시점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과학적 과신이 만든 위기 속에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그 끝에는 반드시 귀향이 따라옵니다. 트로이는 그 자체로 귀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되는 사건입니다. 또한, 트로이는 귀향 불가능성에 대한 서사를 내포합니다. 『아가멤논』과 같은 고전에서도 귀향은 단순한 기쁨이 아닌, 새로운 비극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아가멤논은 귀향 후 살해당하며, 오디세우스는 집에 돌아왔지만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다시 싸워야 했습니다. 트로이는 단지 출발점이 아닌, 귀향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벽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트로이는 귀향이 단순한 감성적 복귀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전쟁과 상실, 희생과 배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회복하려는 인간의 몸부림을 담은 상징입니다. 트로이에서 출발한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겪는 ‘상처받은 삶의 회복기’이며, 그 회복은 다시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트로이는 단순한 장소가 아닌, 서사의 동력이며 귀향의 필연적인 근거입니다. 노스토스는 운명과 자유의지가 교차하는 인간 서사의 정수입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인간 존재의 회복과 정체성의 복원 과정을 상징하며, 트로이라는 전쟁은 그 시작점이자 상처의 기원입니다. 현대 영화 속 귀환 서사 역시 이 고대 구조를 계승하고 재해석하며, 우리가 왜 ‘돌아가야만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도 노스토스가 존재할지 모릅니다. 이제, 당신의 귀향은 어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