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속 운명 서사의 철학

by 집주인언니 2025. 9. 11.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속 운명 서사의 철학 관련 사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 문학의 정수이자, 서사 구조와 철학적 메시지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텍스트입니다. 특히 이 두 작품은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상반된 개념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어떤 방식으로 충돌하며 통합되는지를 드러냅니다. 트로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무대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실현하는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기도 합니다. 본 글에서는 운명, 자유의지, 트로이라는 세 축을 통해 호메로스 서사에 담긴 철학적 질문을 심층적으로 탐구합니다.

운명: 피할 수 없는 흐름인가, 신의 설계인가

호메로스의 서사에서 운명은 단순한 설정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것은 신들이 내려주는 선언일 수도, 인간의 본성 속에 내재된 흐름일 수도 있으며, 혹은 우주적 질서의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모두에서 운명은 거대한 줄기로 등장하며, 인물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일리아드』에서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받고도 전장에 나섭니다. 그는 신의 어머니 테티스를 통해 이미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면 오래 살 수 있지만, 전쟁터에서 싸우면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란 선택지 앞에서 그는 후자를 택합니다. 이 장면은 호메로스가 '운명'을 단순히 피할 수 없는 불행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받아들이고 실현해 내는 것으로 그렸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의 운명은 고정된 미래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결합하여 실현되는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기능합니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죽음을 숙명으로 여기지만, 동시에 그것을 명예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자신뿐임을 압니다. 이는 호메로스가 운명을 수동적으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운명은 인간이 받아들이되, 그에 맞서 싸우거나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태도를 통해 완성됩니다. 『오디세이아』에서는 보다 복잡한 형태로 운명이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는 귀향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항해하지만, 수많은 신과 자연의 방해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운명의 일부인지, 아니면 신들의 변덕인지 불분명합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운명의 정의를 다시 묻도록 유도합니다.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정해진 운명일 수도 있지만, 그 운명이 실현되기 위해선 그의 지혜, 인내, 행동이 필수적입니다. 이처럼 호메로스는 운명을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실현되기 위한 과정으로 그렸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운명(moira)은 필연적 질서였지만, 동시에 인간이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개념이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정해진 운명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 운명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선택,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모두 '운명은 고정된 것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자유의지: 선택할 수 있는 인간, 책임져야 하는 인간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자유의지는 단순한 반항의 개념이 아닙니다. 인간이 신들보다 약한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모두에서 인물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본질입니다. 『일리아드』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입니다. 그는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장에서 이탈하고, 이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이 결정은 신의 명령이나 운명이 아닌, 철저한 개인의 감정과 판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자유롭게 행동했고, 그 결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죽자, 그는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임을 인식하고 다시 전장에 나섭니다. 이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과정입니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더욱 능동적인 자유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신들이 마련한 함정과 유혹 앞에서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세이렌의 노래를 듣기 위해 자신을 돛대에 묶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는 장면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이성적 선택의 상징입니다. 또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사이에서 더 작은 피해를 감수하는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전략적 판단과 책임 의식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오디세우스는 단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타카의 왕으로서 복원되어야 한다는 사명을 지니고 있으며, 그 여정은 단지 귀향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의 회복과도 연결됩니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의지, 판단, 그리고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호메로스는 이러한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통해, 인간은 비록 신보다 연약하고 제약된 존재이지만, 스스로의 삶을 조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호메로스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단지 신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과 운명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자신만의 길을 선택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며, 인간 중심의 서사로 전환시킵니다. 자유의지는 곧 책임이고,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호메로스는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제약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합니다.

트로이: 역사적 배경인가, 철학적 상징인가

트로이 전쟁은 단순한 고대 전쟁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를 배경으로 인간과 신, 운명과 의지, 영광과 비극의 모든 요소를 엮어냈으며, 이를 통해 문명과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합니다. 트로이는 실재했던 도시일 수도 있고, 상징적인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볼 때, 트로이는 인간의 운명이 펼쳐지는 가장 극적인 무대입니다. 『일리아드』에서 트로이는 단지 함락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곳은 헥토르의 가족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며, 아킬레우스가 싸워야 할 장소이자, 그리스 연합군이 명예를 걸고 공략하는 목표입니다. 모든 인물의 삶과 죽음이 이곳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각자의 운명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트로이입니다. 이곳은 전쟁의 배경이자, 인간의 선택과 결과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트로이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과, 피할 수 없는 신의 의도가 충돌하는 장입니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려오며 시작된 전쟁은 개인의 욕망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전개는 신들의 의도와 인간의 의지가 얽힌 복잡한 흐름을 따릅니다. 전장은 인간의 감정, 신의 간섭, 공동체의 붕괴, 개인의 고뇌가 한데 뒤섞여 있는 '운명의 용광로'입니다. 특히 헥토르의 죽음 장면은 트로이의 비극성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나라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만, 결국 아킬레우스에게 패하고 시신은 모욕당합니다. 이 장면은 영광의 절정이 아니라, 인간성의 침식과 운명 앞에서의 무력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와 아들의 시신을 되찾는 장면은, 그 속에서 다시 인간적 윤리와 연민이 되살아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트로이는 인간성의 몰락과 회복, 비극과 연민이 교차하는 문명의 교차점입니다.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는 과거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오디세우스의 삶과 기억 속에서 강력한 상징으로 작동합니다. 귀향의 의미는 단순히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트로이 전쟁 이후 파괴된 질서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트로이는 인간이 만든 비극의 무대인 동시에, 교훈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운명과 자유의지를 아우르는 서사의 깊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는 인간이 운명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지를 탐구한 위대한 서사입니다. 그는 인간이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선택하고 행동하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운명과 자유의지가 충돌하면서도 동시에 공존하는 호메로스의 세계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