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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속 오디세우스의 현대적 변용 (신화해석, 상징, 패러디)

by 집주인언니 2025. 9. 25.

『율리시스』 속 오디세우스의 현대적 변용 (신화해석, 상징, 패러디) 관련 사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서, 서사적·언어적 실험의 극치이자 현대문학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이 소설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바탕으로 하여, 그 구조와 인물을 현대 도시 더블린의 하루로 치환하면서, 인간 존재와 의식의 본질을 탐색합니다. 조이스는 단순히 호메로스의 텍스트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 상징적 구조와 철학적 의미를 현대적인 감각과 문체로 완전히 재해석함으로써 문학사에 유례없는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글에서는 『율리시스』 속에서 고대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어떻게 재탄생했는지를 중심으로, 신화적 서사의 현대적 변용, 상징의 치환, 패러디 기법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인간 내면의 여정과 현대인의 정체성 탐구라는 관점에서 오디세우스와 블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오디세이아의 신화 구조와 현대적 탈영웅화 (신화해석)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경 호메로스에 의해 기록된 서사시로,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에 걸친 고난의 여정을 떠나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괴물, 여신, 유혹, 전쟁 등 온갖 시련을 통과하며 결국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왕위를 되찾습니다. 이러한 서사는 고대 서구문명에서 이상적인 영웅의 전형을 제시하는 동시에, 인간 존재의 시련과 성장을 상징적으로 그려내는 상징체계로 기능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조이스는 이 전통적인 영웅 서사를 정면으로 해체합니다. 『율리시스』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전사도, 모험가도 아닙니다. 그는 광고업에 종사하는 유대계 중년 남성으로,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시민입니다. 그의 여정은 바다나 전쟁터가 아닌, 더블린의 거리와 술집, 식당, 도서관, 창녀촌 등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이스는 블룸의 하루를 오디세우스의 10년 여정과 구조적으로 병렬화함으로써, 영웅 서사의 본질을 재구성합니다. 조이스는 “모든 인간은 자기만의 오디세이를 걷는다”는 전제하에, 오디세우스를 단지 신화적 인물이 아닌 인간 보편의 상징으로 격상시킵니다. 블룸은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상실의 인간이고, 아내의 외도를 감내하는 상처받은 남편이며, 사회적으로는 소외되고 인종적으로는 차별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용맹함이나 지략으로 시련을 돌파하지 않으며, 오히려 수용, 인내, 성찰을 통해 자기 존재를 유지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전통적 영웅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복하며, **“내면의 오디세우스”**로서의 의미를 획득합니다.

2. 인물 구조의 병렬성과 상징적 대응 (상징)

『율리시스』는 총 1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오디세이아』의 주요 장면들과 대응됩니다. 예를 들어, 소설의 첫 세 장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중심으로 한 서사를 패러디하여, 젊은 지식인 스티븐 디달러스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스티븐은 철학과 예술에 고민하는 현대적 인문주의자로, 지적 갈등과 정체성 혼란을 상징합니다. 이는 『오디세이아』에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텔레마코스의 여정을 반영합니다. 그 이후 블룸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오디세우스의 재현이 시작됩니다. 블룸의 하루는 『오디세이아』의 수많은 에피소드—칼립소의 섬, 키르케의 마법, 로터스 이터의 유혹, 하데스의 방문, 스킬라와 카립디스 등—과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다만 조이스는 이 장면들을 현대 더블린의 풍경 속으로 이식합니다. 예를 들어, 로터스 이터의 유혹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지루한 광고 회의를 나누는 장면으로 재구성되고, 키르케의 장면은 창녀촌에서의 환각과 환상이 섞인 의식의 흐름으로 묘사됩니다. 조이스는 각 에피소드에 상징적 주제를 부여하고, 그에 맞는 스타일과 언어를 적용하여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층위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해변의 나우시카’ 장에서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블룸의 시선을 통해 남성의 욕망과 성적 억압을 다루며, ‘옥시즌’ 에피소드에서는 병원에서 출산을 주제로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다룹니다. 이러한 상징적 구조는 단순한 대응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다양한 층위를 신화적 틀 속에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구현됩니다.

3. 서사적 패러디와 문체 실험 (패러디)

『율리시스』가 문학사적으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조이스가 전례 없는 문체 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각 장마다 문체, 서술 방식, 시점, 언어 형식을 완전히 바꾸며, 독자가 끊임없이 텍스트의 규칙을 재정립하도록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외과의사의 밤’ 장에서는 환각과 광기의 언어가 폭발하고, ‘신문의 장’에서는 다양한 신문 기사 스타일을 모방하며, ‘이타카’ 장은 질문과 대답의 과학적 대화체 형식을 따릅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체 실험은 단순한 문학적 유희가 아니라, 고전 텍스트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작업입니다. 조이스는 고대의 권위 있는 서사 형식을 풍자하면서도, 그 속에 현대인의 불안과 고통, 존재의 혼란을 투사합니다. 예컨대, 블룸은 더 이상 용맹한 영웅이 아니라, 불안정하고 분열된 자아를 지닌 존재이며, 그의 ‘여정’은 외부 세계가 아닌 내면에서 펼쳐지는 자기인식의 과정입니다. 이러한 패러디 구조는 『오디세이아』와 『율리시스』를 단순히 고전과 현대의 비교가 아닌, **문학이 어떻게 시대의 의식을 반영하고 해체하는지를 보여주는 장**으로 만들어 줍니다. 조이스는 독자에게 문학은 ‘읽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고 구성하고 질문하는 과정’임을 강조합니다. 『율리시스』는 이와 같은 메타서사 구조를 통해, 기존의 영웅 서사와 신화적 권위를 해체하고, 새로운 독서의 문법을 제시합니다.

4. 도시 더블린: 현대 오디세이의 무대

조이스가 『율리시스』의 무대를 고향인 더블린으로 설정한 것은 단순한 배경 선택이 아닙니다. 더블린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조이스의 소설에서 하나의 인격체로 작용합니다. 『율리시스』는 단 하루, 1904년 6월 16일의 더블린을 배경으로 하며, 조이스는 더블린의 거리, 상점, 교통, 정치, 문화, 사상, 언론, 종교 등을 철저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이 도시를 마치 오디세우스가 지나간 에게 해의 섬들처럼 ‘현대적 모험의 장소’로 탈바꿈시킵니다. 더블린은 블룸에게는 현실의 공간이자, 정체성 혼란의 공간이며, 동시에 자아성찰의 장소입니다. 그는 도시의 군중 속에 있으면서도 철저히 고립되어 있고, 물리적 공간을 걷는 동시에 정신적 공간을 유영합니다. 더블린은 블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독자가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현대적 이타카입니다. 조이스는 이 도시를 선택함으로써, 오디세우스의 신화적 여행이 신화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증명합니다. 더블린은 그 자체로 신화적 공간이 될 수 있으며, 현대인은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 속에서 충분히 모험하고 방황하고 귀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5. 몰리 블룸과 페넬로페: 여성의 재해석

『율리시스』의 마지막 장은 몰리 블룸의 의식의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장 부호 없이 이어지는 약 40페이지의 독백은 문학사상 유례없는 여성 의식의 표현으로 평가됩니다. 몰리는 『오디세이아』의 페넬로페에 대응되는 인물입니다. 페넬로페는 남편 오디세우스를 기다리며 정절을 지키는 전통적인 여성상이지만, 몰리는 전통적 성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조이스는 몰리를 통해 여성의 내면을 낭만화하지 않고, 현실적이며 육체적이고 본능적인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몰리의 독백은 남성 중심의 서사를 해체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독자는 그를 통해 조이스가 어떤 방식으로 신화의 젠더 구조를 비판하고 전복하려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몰리의 최종 독백 “Yes”는 그 자체로 생명, 수용, 사랑, 삶의 긍정을 상징하며, 오디세우스의 귀환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인간의 귀향, 즉 자기 자신에게로의 회귀를 상징합니다. 이는 『율리시스』 전체 구조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율리시스』는 고대 신화의 구조를 빌려오되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현대인의 삶과 의식에 맞게 전복, 해체,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인물을 통해 고전 영웅의 이미지를 일상인의 초상으로 치환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모든 삶은 서사다’라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전합니다.

결론: 신화는 죽지 않았다, 그것은 당신 속에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신화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인간 내면의 여정을 탐구하는 문학적 실험장이자, 20세기 서사문학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블룸이라는 평범한 인물은 더 이상 고대 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의 대체물이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에 내재한 영웅성을 상징합니다. 조이스는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그 의미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신화는 더 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숨쉬는 이야기로 탈바꿈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더블린을 걷고 있고, 자신만의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조이스는 이 점을 천재적으로 파악했고, 『율리시스』를 통해 독자들에게 ‘당신도 오디세우스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단지 조이스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은유이며, 오늘의 일상 속에서 신화가 어떻게 살아 숨쉬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거울입니다.